“이게 뭐야? 새순이 돋았네!”
J는 신기한 듯이 거실에 있는 화분을 찬찬히 살펴봤다. J는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에 관심이 없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 해도 직장을 다니니 제대로 보살필 자신이 없었고, 반려식물(?)-화분을 키워도 매번 고사했다. 그 키우기 쉽다는 산세베리아를 말려 죽이고 난 뒤로, 집에 화분을 들인 적이 없었다.
1월 승진하면서 축화 화분을 많이 받았다. 뒤늦은 승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챙겨준다는 데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받은 화분은 사무실에는 한 개만 두고 전부 집으로 들고 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직접 집에 들인 화분이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화분을 쳐다보며 인사하고, 집 안이 건조하다 싶으면 물도 꼬박꼬박 준다. 잎사귀에 먼지라도 있으면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기도 한다. 화분이 무성하게 자라면 내 일도 순탄해질 것 같았다. 믿는 신은 없으면서 이 작은 생명에 기대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러고보니 사무실에 J의 키만큼 큰 화분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집에 가지고 오지? 차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 한참 전부터 집으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타 부서로 옮기면서 두고 간 화분이었다. 돌려주려 해도 누구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내 화분이 되었다.
항상 바쁘게만 살아 계절이 바뀌는지, 꽃이 피는지 J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계절 가는 게 좋아졌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운전하다보면 계절 변화가 몸으로 느껴졌다. 봄이 되면 나무들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여름이 시작되는 때에는 노란색도 아니고, 연두색도 아닌, 햇살에 반짝이는 파릇파릇한 잎사귀들을 돋아났다. 가을은 또 어떤가? J가 감성이 없다고 해도, 단풍이 물드는 풍경을 지나칠 만큼 무딘 사람은 아니었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을 아름다운 풍경들이 주변에 펼쳐졌다. 어떤 날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시간 외에 줄곧 운전해도 지겹지 않았다.
10년을 그렇게 다녔다. 팬데믹때는 야외 활동이 제한되었고, 엔데믹 이후로는 어딜가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J도 최근 몇 년은 드라이브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어서 빨리 날이 따뜻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한 그림때문이다. 선긋기만 하던 그림이 이젠 어느 덧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릴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 올해는 꼭 그림 도구를 챙겨 들고,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할 계획이다. J는 첫 야외 스케치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그림 연습을 하고 있다. 올봄, 스케치북 위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J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필을 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