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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18. 2022

천 원의 의미

  

  집 앞에 아들의 바람 빠진 자전거가 서 있은 지 오래다. 처음엔 신경이 쓰이더니 점차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조형물처럼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빨간 안장이 소복이 쌓인 먼지로 허옇게 변해가고 있을 즈음 아들이 말했다. 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했으니 자전거 바퀴를 고쳐야겠다고.

  

 아이와 함께 자전거포에 갔다. 핑크빛 유아용부터 산악용까지 색깔도 용도도 다양한 자전거들이 제각각 뽐을 내고 있었다. 내가 중학시절 등하굣길에 타고 다녔던 당시의 내 보물 1호는 이 가게에서는 뒷방도 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차멀미가 심해서 도저히 버스로는 통학이 어려운 데다가 걸어 다니기에는 먼 거리여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자전거 통학이었다. 급히 배운 티 내느라 많이도 넘어지고 깨지면서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그제야 제법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처럼 번잡한 큰 도로는 아니었어도 꽤 많은 차들이 오갔던 거리를 아무 사고 없이 다녔던 걸 보면, 당시의 운전자들의 배려를 짐작해 봄 직하다.


 자전거 통학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늘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근처 분식집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나도 무리 속에 끼고 싶은 유혹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늘 아쉬운 나를 자전거에 태웠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내 주머니를 검사하시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셨다. 당시엔 천 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꽤 많았다. “갑자기 버스 탈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배고프면 뭐라도 사 먹어야 하니 용돈 떨어지면 꼭 말해라.” 아버지는 내게 당부하셨다. 그런데 버스 탈 일도 안 생기고 배고파도 뭘 사 먹을 시간이 없어서 그 천 원짜리 지폐는 늘 내 주머니에 있었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교실 환경정리를 하고 나서느라 평소보다 많이 늦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질까 봐 내심 겁이 났다. 한 친구가 학교 앞 분식점에 들렀다 가자며 앞장섰다. 친구들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분식집 문턱이 내겐 얼마나 높게 느껴졌는지. 그날은 유혹을 뿌리칠 인내심이 없었다. 떡볶이와 튀김 맛에 반해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것도 잊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천 원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야 현실이 내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탄 버스는 속이 울렁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를 내려주었다. 그런 몰골로 집에 들어선 나 때문에 부모님의 얼굴은 더 하얘지셨다. 무슨 일 있었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은 어린 딸에게 일어났을지도 모를 갖가지 상상에 애가 닳으셨을 터이지만 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셨다. 내가 그날 운 이유가 어둠을 달려 집에 오는 길이 무서워서였는지, 멀미로 고생한 것이 서러워서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음 날 아버지는 내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또 넣어 주시며 언제나처럼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주머니에 돈 떨어져서 다니면 안 된다.” 그때 처음으로 그 천 원의 의미를 알았다. 아침마다 딸아이의 주머니를 뒤져보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내 주머니에는 돈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염려와 기도가 들어있다는 것을….

 

 주말에 자전거 하이킹을 간다는 아들에게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넸더니 점심 값도 안 된다며 웃었다. 천 원짜리 몇 장을 더 보태줬더니 들고 다니기 힘들다며 “꼭 천 원짜리로 줘야 해?” 하며 푸념을 했다. 하마터면 '라떼는 말이야...'라고 내뱉을 뻔했다. 세대차이 나는 꼰대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해서 말을 삼켰다.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주머니 속에 엄마의 염려와 기도를 듬뿍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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