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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29. 2024

주제 : 산과 바다

미션 : 없음.




바다를 옆에 두고 사는 나는 부산 사람이지만 바다를 즐기지 않는다. 여름엔 더욱 찾지 않는다.



부산에 살다 보니, 눈발이 조금만 흩날려도 어쩔 수 없이 호들갑 떨게 된다.

"꺄~~~ 눈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눈을 보면 열광하기 마련.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대부분 그렇다.

이쯤 되면 늘 겨울마다 눈을 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진다.


"당신은 눈을 좋아하나요?"


내 주변 지인 중에 눈을 자주 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아우, 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 해."


그 반응이 나는 아쉽지만 한편으론 이해된다.

"바다 옆에 사니까 좋겠다."라는 반응에 할 말을 잃곤 하니까.

바다 옆에서 살면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해무.

아침부터 몰려오는 물기 머금은 뿌연 안개는 눈뜨자마자 마음을 찌뿌둥하게 한다. 공기 중에 고여있는 물기는 온 가구와 벽지를 축축하게 한다.

제습기를 풀가동해도 밤이면 이불이 눅눅해 보일러를 살짝 돌려야 누울 수 있을 정도다.

여름에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름엔 특히 심할 뿐  사계절 내내 해무를 보게 된다.

사계절 느닷없이 몰려오는 해무는 처음엔 감성을 몰고 왔다.

하루 이틀 살다 보니 "아우, 또... 빨래 어떡해."라는 걱정을 몰고 왔다.


<다대포 해무>

<광안리 해무>

<해운대 해무>


바다.

열심히 일한 자, 여름이면 뛰어오는 그곳.

나는 최대한 바다를 벗어난 곳으로 이사했다.

해무를 피해, 교통대란을 피해.


그렇다면 나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일부러 산을 찾아 오르기도 하니 바다보단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낮은 등산로가 있어야 한다. 돌산을 엎드려 기어올라 갈 만큼의 열정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정상을 오르는 길 중간중간에 쉴 곳이 있으면 좋겠다. 무거운 다리도 쉬고 작은 등산 가방에 담아 온 믹스커피도 마실 수 있어야 하니까. 여름엔 수박도!!

정상까지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달랐으면 좋겠다. 오르는 길엔 열심히 산을 탐닉하고 내려오는 길엔 열심히 식도락을 즐길 수 있게 말이다.

닭백숙, 오리불고기, 파전과 막걸리, 묵무침과 동동주도 나쁘지 않겠다.


<승학산 억새밭 길>


<꽃동네 파전과 막걸리, 부산하면 생탁이다.>




이런 조건을 다닥다닥 붙일 정도니 내가 좋아하는 게 등산인지,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명백히 주객전도된 상황 같아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난 그다지 산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약간의 일탈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오락실 같은 곳.

바다도 산도 나에겐 딱 그 정도다.

너무 좋아서 애가 타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는 장소다. 둘 다.

바닷속에 풍덩 뛰어들거나, 열심히 산을 오르는 걸 배제하고 즐기기 위해 가는 곳.

확 트인 풍경에 눈이 즐겁고, 맛있는 음식들로 입이 즐거운 만능 오락실.

'오늘은 어떤 오락이 재밌을까?' 여기저기 기웃대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나는 오늘도 이 산, 저 바다로 가끔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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