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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Mar 02. 2024

주제 : 나만의 건강관리 비법

미션 : 욕심 줄이기



지금 내 체중 잘 모른다. 한참 다이어트한다고 매일 체중을 재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잊고 산다.

그래서 내 배는 아파트 뒷산처럼 지막한 언덕을 이루게 됐고, 내 몸은 전체적으로 살집 있는 몸매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살이 빠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임신과 입덧을 핑계로 열심히 먹은 후유증은 극심한 통증을 가져왔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은 조금만 움직여도 발목과 무릎을 아프게 했다. 병원으로 향했고 갓난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업고 갔었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아기 엄마, 고생이 많죠? 여기까지 업고 온 걸 보면 어디 맡기고 좀 쉴 틈도 없겠지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작은 미소를 띠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충격을 가져왔다.

"아기 엄마, 엑스레이 한 번 보세요. 아무 이상 없고 너무 깨끗하지요? 아기가 참 이쁜데 언제 낳았지요?"

"태어난 지 4개월 됐어요."

"그럼 백일이 지났네요? 아기 가지기 전 몸무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 어떤가요?"

"....." 할 말이 없었다. 막달 체중 그대로였으니.

"이제라도 안 늦었으니, 딱 5킬로만 빼 봐요. 그래도 발목하고 무릎이 아프면 그때 와요. 내 다시 진료 봐줄 테니까. 아기 엄마 키가 참 아담한데, 갑자기 늘어난 체중 때문에 관절이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하하하하.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살 빼라는 소리를 이렇게 따숩게 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아기 엄마 관절이 걱정돼서 그러니, 꼭 5킬로라도 빼 보도록 해요. 그럼 다시 병원 올 일 없을 거니까요.'

이 말에 누가 반박하고 따져 물을 수 있을까.

그날부터 나는 시간만 나면 걷기 시작했다. 누구는 걷기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근력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금씩 같이 꼭 하라고.

하지만 같은 자세로 몇 번씩 반복하는 근력 운동은 오히려 운동하려는 의지를 꺾어갔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 몸을 더 무겁게 하기만 했다.


그래서 걸었다. 장마철엔 아기띠로 아기를 업고 걸었고, 날 좋은 날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동네를 걸었다.

10분에서 20분으로 늘어난 시간은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을 걷기도 했다. 종종 만보 걷기를 목표로 걷기도 했고, 가끔은 만 오천보를 목표로 걷기도 했다. 먹는 건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한 달 만에 3킬로가 빠졌으니 다이어트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그렇게 빼고 빼고 빼고 빼고, 내 인생에서 최저 몸무게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강박을 얻었다.

체중계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생활이 시작됐고, 조금이라고 체중이 올라가면 굶었다. 못 굶었다면 몇 시간이고 걸었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였지만, 어느새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몸은 날씬해졌는지 모르지만 내 정신은 좀 먹고 있었다. 예민해져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고 급기야 몰래 숨어서 먹기 시작했다. 먹고 토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하루 종일 체중계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 나. 하루 종일 굶다가 누가 안 보는 한밤중에 과자, 빵, 초콜릿 같은 고열량 음식만 미친 듯이 골라 먹는 내가 미웠다.

나를 미워하는 내가 슬퍼서 눈물이 났다.


발목과 무릎은 안 아픈 지 오랜데, 체중계 숫자 내려가는 재미에 원래의 목표를 잊고 살았다.

아프지 않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로 오히려 난 또 다른 병에 걸렸다. '더 빼야 돼 병'

그날부터 나는 다시는 걷지 않았다.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삼시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칼로리를 계산하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밥 한 숟가락 상추에 싸서 쌈장 올려 먹고 있다.'라며 먹는 일을 중계했다.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 '군것질할 바에 이렇게 든든하게 건강한 한 끼를 먹는 게 더 좋은 거야.' 주문을 외웠다.

그러길 1년.

물론 살은 좀 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 마음껏 심취해 있다.

사정 모르는 이웃이 "요요 왔나 봐요. 호호호"하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금세 짜증 내고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과자 한 개 먹었다고 몇 시간을 걸었던 나를 떠올려 보면 잠시 미쳤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위해 무언갈 시작한다는 마음만 먹어도 다이어트 때의 강박이 슬그머니 비집고 나오는 기분이다.

그래서는 나는 일부러 마음먹지 않는다. 대신 가까운 거리는 늘 백팩을 메고 걷고, 저녁 때라도 쌈채소를 함께 먹으려 노력한다.

내 몸은 비록 통통할지 모르나 내 삶건강하다.

내 마음이 건강하니 그것으로 됐다.


내 건강 비법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건강 비법을 깨달았다.

무언갈 꼭 해야겠다 다그치지 않는 마음.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평가절하하는 마음.

더 나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로부터 벗어난 "건강한 마음"이 바로 내 건강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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