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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Mar 06. 2024

선명한 사랑

고수리 / 유유히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들조차
고수리 작가의 눈길과 손길 끝에선 따사로운 햇빛으로 물들게 된다.

아주 소중한 것을 작은 두 손으로 그러쥔 듯
소중히 꺼내보게 하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상처받은 나도, 외로웠던 나도, 행복했던 나도 발견했다.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았지만,
다른 이의 삶을 보는 일은 나에게 크고 작은 위로를 남겼다.
점점 에세이를 찾게 되는 이유는,
헝클어진 내 마음을 나 대신 잘 정돈해 주고 이름표 붙은 감정 상자에 잘 정리해 주는 고마운 이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고수리 작가의 글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순간들을 다소곳이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_p34,35
"아가, 꽃 봐라."
달곰한 향기가 났다.(...) 가만히 바람이 지나갔다. 품에 안은 아기들의 무게와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언가 속삭여주고 싶었지만 목울대가 아렸다. 아름다운 순간에는 어째서 울고 싶어지는 걸까. 그저 오도카니 서서 함께 꽃을 보던, 잊을 수 없는 봄밤이었다.
_p89
"아꼬와 죽겠지."
암, 나도 알지. 나도 그런 게 너무 소중해 엄마. 할머니가 쓰던 솜이불 하나 버리지 못하고 기우고 덧댄, 엄마의 미련스럽도록 아까운 애정과 너무 넘쳐서 못 버리는 다정 같은 것들. 그런 거 전부다.
_p174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하루. 늦잠 자고 일어나 껴안고 뒹굴뒹굴하던 아침. 아이스크림 먹으며 타박타박 돌아오던 골목길. 크레파스로 그린 엄마 얼굴 선물 받던 어버이날. 라디오를 틀어두고 집밥 지어먹던 저녁. 잠든 아이들 들여다 보다가 뽀뽀해 주던 밤.
지나고 나서야 멀어지고 나서야 선명해졌다.
나 정말 행복했었구나.





새로운 단어와 표현이 가득한 책이다.
익숙한 감정들이 정겹고 사랑스러운 말들로 예쁜 옷을 차려입은 듯 곱기만 하다.

오늘은 때마침 비가 온다.
곧 봄이 오려나, 들뜨게 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목련 꽃봉오리가 더욱 올라온 게 봄이 어디까지 왔나 내다보는 모양새다.

이런 평범한 장면도
뽀얀 필터에 주황, 노랑 빛깔을 곱게 입힌 명장면으로 탈바꿈시키는 작가님.

그래서 알 게 됐다.
"내가 지금 참 행복한 시간에서 살고 있구나."
"멀리 있는 파랑새만 쫓던 아이들처럼, 더 큰 행복만 바랐구나."


작가의 일상,
엄마와의 추억,
비 맞고 눈 맞으며 자랐던 어린 시절,
할머니, 순자이모, 엄마를 통해 배운 사랑,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두 아이와의 일상,

다양한 시점과 관계 속에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ㅡ볕뉘 같은 보살핌.
ㅡ목화솜이불 같은 포근함.
ㅡ"영영 예뻐라."라는 말에 담긴 마음.
ㅡ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는 일이 주는 소중함.

모든 것엔 사랑이 있음을 말했다.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게 했다.

새로운 표현 하나, 모나지 않은 단어 하나,
애쓰며 골랐을 작가의 노력이 글 곳곳에서 느껴졌다.
행여나 마음 다치는 이 없길 바라는 다정이 차고 넘쳤다.

"참, 감사하다."
이 책을 읽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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