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 좀 먹어. 고기만 먹지 말고!!!"
좋게 말해선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결국은 버럭 했다. 고기만 먹으면 안 되는 법은 없지만, 채소도 곁들여 먹이고 싶은 마음은 만국의 엄마 마음 아닐까?
아이들 편식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고민하다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내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변명이 될 테니까.
책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안 읽는 책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독서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만 골라 읽는 일을 편독이라 표현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어찌나 마음 한 편이 움찔하던지.
"편독하는 사람, 여기도 있어요."
편독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문장은 '대부분' 고치고 싶다는 표현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편독을 내세워 자기소개를 하는 분들도 있었으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고쳐야 하는 거야?'
소설과 에세이, 습관 관련 책만 골라보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던 내가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던 차에, 편독이라는 단어는 혼란스러움을 몰고 왔다.
집 앞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서 자기 계발서, 과학서, 철학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한 권씩 뽑아 책상에 앉았다. '재밌게 읽었다.'는 후기가 많은 책을 기준 삼아 뽑아보았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는 기분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사람이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 어깨에 십만 볼트 전기가 통한 순간,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빨리 작은 도서관을 빠져나온 그날, 난 다짐했다.
남들 눈과 기준에 맞춰 읽느라, 다신 잠들지 않겠다고. 대신 내 호기심을 건드리는 책이 있다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어도 도전해 보자고.
유행을 따라 큰맘 먹고 철학서 읽기에 도전했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간신히 한 페이지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도통 모르겠다. 난 꿈속에서 니체에게 묻는다.
"좀 더 편독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