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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Aug 23. 2024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책은 내 도피처였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분명 아까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라고?
무거운 눈을 뜨지 못하고, 꼼지락 거리다 그대로 다시 잠들고 말았다.
   "엄마~~~~~~~~"
나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언제 잤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벌써, 7시 반.
  지각이다.

  지난밤, 나는 5분만 읽고 자려고 했다. 새로 도착한 책표지에 이끌려 손과 눈이 움직였고, 5분이 10분 되고, 금세 한 시간이 흘렀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 그만 읽자고 마음을 다잡은 게 새벽 세시 반. 무조건 자야 된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들켰다간 또 앵무새 같은 레퍼토리를 들어야 하니까.
  "아니,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누가 책 읽지 마래?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그렇다. 나는 책에 빠져도 너무 빠져버렸다.
  "엄마, 책 좀 그만 읽어요."라는 말을 듣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도 믿지 못할 노릇이다.

  마음이 힘들 때, 슬플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공감을 바라며 힘겹게 꺼낸 말에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오히려 울화만 더 쌓였다. 그때마다 나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현실 속 문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까.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일부러 책을 펼쳤다.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시간 보내기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어찌나 꿀잠 주무시게 하는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머릿속도 개운했다.

  수면제용으로 시작된 독서였다. 간신히 읽은 첫 줄이 재밌었던 모양이다. 궁금한 마음에 다음 줄도 읽고 다음 페이지도 읽었다.
  하루 중 가장 힘들 때 펼친 책. 책 속의 문장은 위로가 되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사춘기 아들의 매서운 눈빛에 베인 가슴은 핏빛 스릴러 소설이 치료해 주었다.

  책은 내 피난처였다. 기댈 곳이 필요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곁을 내어주는 든든한 내 편. 그러니 점점 좋아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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