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도 Jan 29. 2024

주제 : 예술적 순간들

미션 : ~의 빼보기


평범한 나에게도 가끔 예술적인 감각이 빛날 때가 있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 순간이 있다.

바로 요리다.



타닥타닥, 슥슥슥.

재료를 다듬고 같은 크기로 썰어본다.

늘 처음은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제일 어려운 과정이 남았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일.

싱겁다. 짜다. 먹는 입마다 다른 평을 내니 늘 마음이 불편하다.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것도 새댁일 때나 가능했던 일.

지금은 결혼한 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온 가족 맛있게 한 끼 먹을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고 남편은 말한다.

좋다는 재료들을 나름대로 응용해 만든 음식은 언제나 미운오리새끼 취급이다.


며칠 전, 카레 사건이 떠오른다.

"아니, 카레엔 감자, 당근, 양파, 돼지고기 끝!! 왜 브로콜리를 넣는 건데? 토마토는 왜 넣어?"

"이게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대. 일단 먹어봐. 후기도 좋더라고"

"난 이런 카레 안 먹어."

"알록달록 예쁘네. 건강 생각해서 먹어봐. 이건 간에 좋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에 힘을 빡 주는 남편이었다.

딱 정해진 재료와 레시피로 요리해야 하는 남편.

음식을 응용하거나 재료를 추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 J성향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


그런 남편과 살다 보니 창의적인 퓨전음식은 시도도 못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먹어보고 싶다고 레시피를 보여주면 저장해 뒀다가, 남편이 출장 간 틈을 타 시도한다.

색다른 요리를 시작하니, 창의력이란 게 폭발한 나.


"얘들아, 엄마 오늘 예술 좀 했다. 너무 이뻐."

"얼른 와서 밥 먹어."

매일 접하는 재료와 메뉴 대신, 새로운 재료와 메뉴를 하는 날이라 잔뜩 흥분했다.

예술적 감각을 한껏 발휘해 뿌듯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엄마, 김 없어요?"

라는 말이 결국 나오고 말았던 저녁.

서로가 서먹서먹한 가운데 조용히 밥만 먹었다.


남편의 지적이 내심 서운했던 나는 아이들과의 만찬에 욕심을 부렸나 보다.

더하고 더하기만 한 요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결과물이 되었고, 김을 찾는 아이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꺼내든 김.

알록달록 색은 참 고왔다.

예술적 감각이 맛까지는 보장하지 못했을 뿐.


우연히 한 번 잘 한 걸 가지고 나는 퓨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속단했다.

한국인들이 자주 먹는 대표적인 음식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김치 등을 못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창조할 기회가 없는 요리라 그렇다고 합리화하면서.

결국 나는 요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잘하는 솜씨까진 갖추지 못 사람이었다.

예술적 감각이 만 활성화된 만년 초보 요리사.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단호한 남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는 알록달록 다채로운 재료와 맛으로 가족들을 만족시켜 볼 테다.


그때까진 나 혼자만 해 먹는 걸로 해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