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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16. 2024

주제 : 나를 두렵게 하는 것

미션 : 독백 넣어보기


황반원공.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내가 앞을 못 볼지도 모른다니!!!






1년 전 책을 보던 나는 텔레비전 화면이 굴절되는 것처럼 책이 구부러지는 현상을 느꼈다. 종이책을 보고 있었으니 핸드폰 화면이 굴절됐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 일이 있기 전날 밤에도 새벽까지 책을 읽은 터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다행히 다음 날은 아무런 증상 없었고, 돌팔이 의사 진단답게 피곤해서 그랬던 걸로 가볍게 지나갔다.


하지만, 한 달 뒤 눈은 평소와 달리 너무 침침했고 뿌옜다. 난시가 심해졌다 싶었고, 나이가 있으니 노안이라 생각하 또 한 번의 돌팔이 의사 진단이 진행됐다.

다초점렌즈로 안경을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렌즈가 십만 원이 넘더라는 후기가 떠올라 생활비 걱정을 했더랬다.


우리 집은 아이가 넷이다. 정기검진을 통해 큰 병을 키우지 말자는 생각으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통해 안과와 치과를 방문한다.

"안 보여요.", "이빨이 아파요." 할 때 가면 수습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미리 검진을 하는 거다. 하루 종일 병원을 투어 하는 동안 대기 시간은 얼마나 긴지, 아이들은 지루해하고 나이 든 엄마는 피로도가 높아진다.

어차피 안과 간 김에 뿌연 시야를 밝게 할 생각으로 시력 검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CT검사까지 찍고서야 내 눈이 심각한 상태임을 예상하게 됐다.


황반에 작은 구멍이 생기는 황반원공이 나타나면 갑자기 시력이 떨어진다. 유리체가 망막에서 떨어지면서 황반 조직 일부를 뜯어 구멍이 생기는 질환이다. 이게 내가 받은 진단명이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1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자연 치유는 불가능한 병이고 3기에서 4기 정도로 진행되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시력이 회복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할까.

아이들의 자녀를 보지 못할까.

괜한 걱정을 사서 하는 요즘이다. 시력이 갑자기 떨어져 안경을 쓰고도 인상을 써야 할 정도이니 가끔은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두려움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민하게 했고 불안하게 했다. 안과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내가 앞 못 보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되냐고.

선생님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렇게 쭉 쓰시는 분도 계시니 미리 걱정 마세요. 대신 6개월에 한 번씩 오셔서 진행 상태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추적 관찰이 지금 내가 하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아니, 내버려 두고 있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데 날마다 한알씩 챙겨 먹고 한 시간 책 읽으면 30분은 눈 감고 누워 있는다.

진행이 더디게 될까 하는 소망이지만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두렵다.

앞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하지만, 그 생각만으로 지내기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조심하면서, 충분한 휴식기를 가지면서 현재를 살고 있다. 아이들을 좀 더 많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책을 하루에 한 권 다 읽지 못해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안경을 두 개씩 들고 다녀도 불편해하지 않고 지낸다. 다초점 렌즈 대신 원시용 안경, 근시용 안경 두 개를 병행해 쓰고 있는데 난 이게 더 잘 맞다. 바꿔 끼는 게 좀 귀찮을 뿐.


겨울방학이라 엊그제 안과를 다녀왔다.

간 김에 내 눈도 검사했고, 여전히 처음 발견했던 그대로라고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왜 이리 안심이 되던지.

앞이 뿌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더 진행되지 않고 있는 내 황반아.

내가 이렇게 신경 쓰고 있단다. 진행되지 않고 이대로만 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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