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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18. 2024

주제 : 여행

미션 : 자신의 메시지를 가장 앞에 적어 보기

여행은 살얼음판을 걷는 고행길이다.

극 J인 남편, 극 P인 저의 여행.

쉽게 상상하지 마시길, 만약 상상하셨다면 거기에 백배의 긴장감을 곱해주시길 바란다.


저녁 식사 후, 컴퓨터만 들여다보던 남편이 나를 부른다. 꼼꼼한 성격의 남편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사이트 별로 비교와 분석을 철저히 하는 편이다. 가끔은 뭘 물어보려고 부르는지 살짝 귀찮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결국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거면서 왜 불러?'

속으로 한마디 하고 슬그머니 컴퓨터 앞으로 가보니, 눈앞에 펼쳐진 네이버지도 앱.

어디를 들러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몇 시에 어디로 도착해서 일정을 마무리한 후 그 지역의 맛집에서 음주를 즐기는 계획이 빽빽하게 적힌 엑셀파일도 첨부해서 보여준다.

벌써 2박 3일의 여행을 다 다녀온 기분에 빠지는 나.

여행을 마치고 써도 이렇게 세세하게 쓸 수 없을 거라 자부한다.


출발은 정확히 새벽 4시 반.

여행지 도착 시간까지 정해져 있는 스케줄표. 중간 어디서라도 계획이 어긋나는 낌새만 보여도 남편은 점점 예민해지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나는 눈치 없이 마냥 신난 아이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하고, 어긋난 계획을 다시 원상복구 시킬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손가락은 열심히 핸드폰 화면을 밀어 올리고, 눈동자를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여본다.

귀는 뒷자리 아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한 채, 운전석의 남편에게서 풍겨져 오는 열기를 온몸으로 감지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내가 찾아낸 대안이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남편.

"후기는 다 읽어봤어?"

"어떤 후기 읽어봤어?"

발길 닿는 대로 처음 보는 곳도 탐험하길 좋아하는 나는 점점 숨이 막혀온다.

출발만 했을 뿐인데 이 정도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품에 안고 걷는 살얼음판 위의 고행이 이제 막 시작됐다.


이왕 가는 여행, 새로운 거 보고 느끼며 즐겁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상상한다.

티브이 속 가족 여행의 즐거운 한 때를.

노랫소리가 흥겹고 아이들은 저마다 즐겁게 따라 부르고, 엄마 아빠는 행복에 겨워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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