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현지 사업 협조를 위해 2년 차 선배와 함께 베트남을 방문했는데, 이번 출장에는 통역사도 함께했다. 베트남어도 영어도 못하는 나로서는 통역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마주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통역사와 함께하긴 했지만, 현지 담당자들은 여러 국제 단체와의 비즈니스 경험이 많아서인지 대부분 영어로 소통하는 게 일상적이었다. 특히 현지의 비즈니스 담당자들이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점점 더 내 자신이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옆에서 미소를 짓는 것뿐이었다. 회의 내내 내가 던진 말은 거의 없었다. 웃음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는 내 모습에 현지 담당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과묵하지만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출장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가만히 웃고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그날 회의에서의 내 역할은 거의 없었고, 선배와 통역사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졌고,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했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외국 출장에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소통하려는 의지라는 것을 이번 출장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도 나만의 소통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의 그 경험은 내 영어 학습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영어를 못하는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그저 웃고 넘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소통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날의 회의에서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영어를 못한다고 위축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수하고, 틀리고, 말이 엉킬지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출장이 끝난 후, 나는 내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느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영어를 잘 못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앞으로도 나는 영어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소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