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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1. 2023

11. 뉴질랜드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아싸 엄마와 인싸 아들의 뉴질랜드 스쿨링

 아이의 변화


  ‘과연 한 달간의 스쿨링으로 아이의 영어 실력이 향상될까?’     


  아마도 해외 스쿨링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대답은 ‘NO’에 가깝다. 수치로 말하자면 가기 전보다 SR 점수가 1점 올랐을 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물론 영유 출신이라면 그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떠나기 전에 생각했던 한 달과 직접 경험한 한 달은 갭이 무척 컸다.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고 무척 사교적인 아이지만, 단짝 친구를 만들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 이름 좀 익힐만하니까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가성비로만 따지면 대치동의 스파르타식 학원에서 바짝 배우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스쿨링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만큼은 확실히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서툴지만 자신이 배운 영어를 직접 써보며 소통의 기쁨을 맛보았고, 이 친구들과 더 재미있게 놀려면 영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환경에서 눈치코치를 발휘하여 학교 수업에 따라가고, 엄마 없이 몇 시간씩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특했다.  


  한 달 살기 하는 동안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의지하며 모자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여기저기 여행하며 추억을 쌓다 보니 둘만 아는 농담과 에피소드가 늘어났다. 훗날 아들에게 사춘기가 와서 나의 멘탈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때 하나씩 꺼내 보며 참을 인을 새겨야겠다.                 


사이좋은 엄마와 아들

      




나의 변화     


  옛 선조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그랬다. 나는 뉴질랜드라는 떡이 무척 탐스러워 보였다. ‘어머 어머 저 하늘 사진 좀 봐.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땜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 공기 좋고 물 좋고 영어까지 배울 수 있잖아?’ 나는 회색 일상에서 벗어나 총천연색 파라다이스에 가길 꿈꾸며 뉴질랜드로 떠났다.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들뜬 마음에 모든 게 다 좋았다. 깨끗한 자연,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푹 빠져들었다.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짊어지고 온 고민과 상처들은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남의 일인 양 느껴졌다. 이 나라에 살면 행복한 일들만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출하면 객실 청소가 싹 되어 있는 호텔에서 자고, 남이 해주는 밥 먹고, 아드레날린 뿜뿜 하는 재미난 체험들만 했으니 가히 천국 3종 패키지를 맛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천국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스쿨링을 위해 한 곳에 정착하고 여행자에서 생활인인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숙제를 봐줬다. 그저 반복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니 뉴질랜드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활이 익숙해지니 그 틈으로 다시 불안과 걱정이 잡초처럼 피어났다. ‘아, 내가 어디에 살건 기본적인 일상은 계속되고, 싫든 좋든 나는 나를 벗어날 수가 없구나.’ 내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끗한 공기, 푸른 잔디, 아름다운 바다 모두 너무나 좋았지만, 남의 떡을 실컷 맛보고 나니 보잘것없어 보였던 내 떡이 슬슬 그리워졌다. “어휴, 한국 같았으면 밥 하기 싫을 때 배민으로 딱 시켜 먹으면 되는데!” “기민아, 절대 다치면 안 돼. 여기는 한국처럼 병원 가기가 쉽지 않아.” “아~ 근처에 편의점도 없고 뭐 하나 사러 가려면 차 타고 나가야 하니 너무 귀찮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한국 타령을 하고 있었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는 경치 좋은 곳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을 때 남편이 떠올랐다. 특히 숙소에 징그러운 벌레가 나타나거나 무거운 짐을 옮길 때 남편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오늘은 어디를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주 영상통화를 하고 사진을 공유했다. 아이는 늘 ‘다음에 아빠랑 셋이 또 오면 좋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그러다 여행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등교 준비를 해야 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시차는 4시간.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연락을 하면, 딱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여행과 비교하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기에 통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그러자 남편이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총각 시절로 돌아간 듯 TV 리모컨을 독차지하고, 집에 사람들을 불러 술 파티를 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남편과 아빠가 그리운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각자의 생활로 인해 벌어지는 거리감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역시 기러기 금지조약을 만든 것이 현명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이다.                





  예전의 나는 이 좁은 한국 땅의 오랜 관습에만 얽매여 다른 것을 볼 수 없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름 대한민국 평균의 삶을 살아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은 늘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러다 뉴질랜드에 가서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대한민국 평균에 맞추지 않아도 내 인생은 틀린 것 아니란 걸 깨닫자 마음이 편해졌다. 요즘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나와 같은 2023년을 사는 머나먼 나라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문제를 객관적인 태도로 볼 수 있게 된다.      


  마흔 살의 나는, 이제 늙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 한 달 살기도 아이를 위해 가는 것이지 나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끝도 없는 초원을 달리고, 경찰에게 잡히고, 거미 하우스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나의 내면은 놀랍게 성장했다. 자기주장을 하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때로는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란 것도 배웠다. 늘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 두려웠는데, 일단 용기 내어 다가가면 의외로 쉽게 친해질 수 있음을 경험했다. 아이를 위한 스쿨링이었지만, 엄마인 나도 한 뼘 자랐음을 느낀다. 비록 몸은 늙어가겠지만, 여행을 하는 한 내 마음은 계속 자라날 것이다.      


어디에 살더라도 나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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