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와 알고리즘
필사 할 시 한편을 고르기 위해 스무편 남짓 시를 읽는다. 어쩌면 이렇게 시를 읽기 위해 필사를 하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눈길을 끄는 시가 있다. '다람쥐'다. 시는 박승우의 <생각하는 감자>속에 숨어있었다. '감자'1,2,3, 하고 순번이 붙은 연작 시부터 해서 여러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 전체가 매력있다.
' 다람쥐 '를 고르고도 생각에 잠긴다.
다람쥐
박승우
가둬 두면
쳇바퀴만 돌리지
놓아 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바퀴를
힘차게 돌리지
숲을 돌리고
지구를 돌리지
몇번이고 읽는다. 시는 거대 시야를 가진 듯도 하고 너무 뻔한 확장을 한듯도 하다. '지구를 돌리자'에서는 안상학 동시 '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가 겹쳐지기도 한다.
다시 시집을 읽는다. 감자 연작시와 그 밖의 시들...... 다시 '다람쥐'로 돌아온다. 나 혼자 읽고 말 시라면 고민이 이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짙은 피로감에 젖어있는 후배선생님과 시를 기다리는 지인들 생각에 더 괜찮은 시를 찾기위해 시집을 더듬는 것이다.
다시' 다람쥐'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필사를 시작한다. 필사는 시를 읽는 또하나의 방식임이 분명하다. 천천히 시를 쓰는 동안 새로운 생각, 깨달음이 저 깊은 수면 속에서 올라온다.
나의 쳇바퀴를 생각한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며 받았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상상의 질서속에서 산다는 말, 그 말은 망치처럼 굳어버린 내 관념을 깨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만든 뉴스와 영화, 쇼츠와 소설, 페이스북의 글들을 철썩같이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쳇바퀴에서 나온 건 정말 다행이다.
난 이제 스스로 생각을, 느낌을 생산하려 한다. 원시인처럼 맨발로 천변을 걸으며 무더위 속에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와 풀에게 배우려 한다.
저 비둘기는 왜 불볕 아래 달궈진 포장길에서 바짝 몸을 굽는지 생각하려 한다.
필사한 시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순식간에 소나기오듯 답장이 온다.
-어떻게 보면 다람쥐는 다름아닌 저이기도 하네요. 사고를 가둬두지 않는 삶...
요즘은 생각이랄 것도 못하고, 관성에 따라, 밑천 드러내며 그냥 바쁘게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보내주신 시 덕에 쳇바퀴 말고 지구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 시는 남편이랑 얘기해봐야겠어요
- 수요일 하루 만이라도 삶을 되돌아 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고맙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안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알고리즘'이라는 틀안에, '가둬두면'에 갇혀서 살고 있구나 싶습니다. 방학 때는 가까운 산으로 산책하고 글 읽는 시간을 늘려 보겠습니다.
- 요새 동학년샘들과 ‘아이들이 너무 알고리즘에 갇혀 사는 느낌이다’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내 입맛에 원하는대로 보고싶은 것만 뜨고 그걸 맛보니까, 시야가 좁아지고.. 어린이들이 뭐가 옳고 그른지 잘 모르고 있는 거 같아요.
심지어 제가 잘못된 말을 해도 ‘맞다’ 대답만 하는 느낌이 점점 들어요
일상은 그랬다. 일하고 돌아와 유튜브 보며 알고리즘에 끌려다니며 괜히 뭔가에 흥분하고,확인하기 어려운 발언에 흔들린다.
그러는 자신에게 시 한편이 균열을 낸다. 쳇바퀴를, 알고리즘을 벗어나라고 한다.
시를 읽고 온 답장을 읽으며 애써 살고있는 이들에게 무한한 연대감과 연민을 느낀다.
-올해처럼 시를 암송하고 써보고 낭독해 보면서
꽉 채웠던 적이 없어요
시를 필사하고 나누면서 뜻밖의 기쁨을 얻는다.
비가 온다. 그래도 남편과 우산을 받고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