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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의 도시 카파도키아

가을, 튀르키예 (2)

by 선데이아보카도


짧은 국내선 비행에도 기내식에 가까운 간식을 준다는 설렘을 안고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행 터키항공을 탔다. 꽤 큼직한 치킨패티와 치즈가 들어있던 샌드위치를 삼키며 카파도키아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잘 도착해놓고 비행기의 안전이 걱정될 만큼 공항이 작았다. 한국의 작은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였다. 수하물이 나오는 곳조차 한 군데라 어렵사리 틈에 끼어 짐을 찾고, 미리 예약해둔 벤을 타고 괴레메 마을로 향했다. 벤에는 호주에서 온 노부부, 샌디에고에서 온 커플, 캐나다에서 온 모녀. 혼자 온 여행객은 나뿐이었지만 괴레메 마을로 들어가는 낯선 도로를 달리며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점차 암벽으로 된 마을이 보이고, 조랑말이 보이고, 선인장 류의 식물이 가득했다. 여행 전 구글맵으로 괴레메를 둘러볼 때 도보 시간이 직선거리에 비해 꽤 걸리길래 의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이해가 됐다. 숙소와 식당 등 대부분의 시설은 꽤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어디에 가도 왠만큼 상상하는 카파도키아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데, 처음 도착한 날 특히나 나처럼 큰 캐리어와 함께라면 차로 이동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동굴호텔을 예약하며 가장 우려했던 건 습하지 않을까였다. 이 습도에 대한 걱정은 내 코로 들어오는 습기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습도로 인해 평소 보지도 못한 벌레 따위가 나오면 어쩌지 하는 우려였는데, 워낙 여행객이 많은 도시다보니 방마다 에어컨도 잘 되어있고 쾌적했다. 어두워서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뭔가를 투닥 거리기엔 답답함이 있었지만 이게 동굴호텔의 분위기지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짐을 풀고 평소랑 다른 풍경에 흥이 올라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든채 여기저기를 신나게 걸어다녔다. 여기가 카파도키아다! 내일 새벽이면 열기구를 볼 수 있겠지! 하며. 음식은 이스탄불에 비해 못했고, 커피값도 비쌌지만 열기구의 나라라는 것 하나만으로 날 들뜨게 했다. 여행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어떻게 와있는지 모르겠는 순간.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엇을 그토록 기다렸을까, 어떤 상상에 매료되어 이 먼 나라까지 혼자 왔을까 하는.


열기구를 탄다고 생각하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텐데. 나는 열기구가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탑승은 계획에서 진작 제외했고(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오래오래 하늘을 볼 수 있게 주변 시야가 트인 숙소로 예약했다. 동이트기 직전부터 열기구 운행이 시작된다는 말에, 평소라면 이제 겨우 잠들었을 시간에 눈을 떴다. 세수도 하지 않고 담요 둘둘 감고 방을 나와 숙소 테라스로 향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 공기였다. 어두컴컴한데 저 멀리 개들 짖는 소리가 나고, 낯선 곳인데도 코로 들어오는 이 공기에 하루만큼은 익숙해졌다는 안락함을 느끼며 벤치에 앉았다. 높은 곳에 숙소를 잡아서일까, 커다란 열기구 하나하나가 막대사탕처럼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불을 반짝이며 위로 떠올랐다가, 나에게 가까이 오면 더 커졌다가, 저토록 동그랗고 커다란 풍선에 사람이 여러명 타고 하늘을 다닌다는게 귀엽기도, 낭만적이기도 했다. 사실 카파도키아를 상상할 때만 해도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컬러풀한 열기구 사이로 대낮의 쨍한 햇살이 들어오고. 모두가 활력을 띤(듯한) 표정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기대하지 않은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카파도키아의 분위기는 맑고 청량한 새벽 동틀 무렵 고요하게 떠올랐다가 저마다의 색을 뿜으며 갈 길을 가는 열기구, 이젠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처럼 날이 밝아졌을 땐 점차 사라지는 열기구. 예상을 빗나간 이 고요함이 좋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 카파도키아를 떠올려보면 또렷한 기억은 새벽 몰골로 하늘을 바라본 일(이 시간에 하늘을 오래도록 볼 일이 살면서 있었을까?),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담배연기에 목이 따가웠다면 카파도키아의 건조하고 탁한 공기에 결국 목감기를 얻었던 기억이다. 동굴호텔의 습도 걱정은 나의 거만함 이었지. 마을이 암석으로 되어있고 어찌 보면 곳곳은 사막에 가깝다. 자동차가 한번 지나가면 CG효과와 같은 모래바람이 일어난다. 이곳에서 그저 신난다고 하루에 이만보씩 뚜벅이로 걸어다녔더니 마지막 날 고열과 인후통에 물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기관지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카파도키아에서 마스크와 생수는, 인공눈물은 챙기길 바란다. 매번 마스크를 하라는 엄마 같은 잔소리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겪을 수 없는 모래바람이 꽤나 자극적이니 챙겨서 나쁠 것 없다. 테라스에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을 붙이고 낯선 인사와 함께 맥주를 즐기던 밤, 호스트는 터키 차가 괜히 유명한게 아니라며 따뜻한 홍차를 건넸다. 칼칼한 목에 뜨거운 차를 삼키며 전날의 새벽을 돌아보던 밤. 또다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모여 앉아 내일의 안부와 앞으로의 안녕을 나누는 일. 이번에도 잘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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