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전교도소에서 사형수 정**가 도주를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롤모델로 삼았다는 정**은 1987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을 살해, 11년간 복역하다 출소한 이후 절도죄로 다시 붙잡혀 6개월을 복역했다. 1999년 출소한 그는 2000년 4월까지 철강회사 회장 부부를 비롯해 9명을 살해하는 등 부산·경남·대전 등지에서 23건의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2010년 사형선고를 받고 17년간 수용생활을 하는 동안 도주를 시도하기 위하여 몸을 혹사시켜 외부병원에 입원하여 도주하려 하였으나 교도관들이 빈틈을 보이지 않아 시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작업장에 출역하고 천주교 종교행사에 매주 참가하여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교도관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한 후 8월 교정직 인사이동이 있던 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도주를 시도하였다. 정**이 도주를 기도하게 된 작업장은 주벽 가까이에 있었고 작업틀이 스테인리스 빨래건조대와 비슷한 재질로 몇 개를 연결하면 사다리가 되는 것이었는데 사람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약한 것이어서 정**이 전자경비시스템 울타리를 넘어 주벽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넘으려 올라섰을 때 부러져 미수에 그쳤는데 만약에 주벽을 넘어 도주하였다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을 사건이었기에 직원들의 징계가 많았다.
교도관은 운수직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사건이었다. 정**이 출역하는 작업장은 담당 직원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 한동안 담당이 없었다. 새로 들어간 담당은 사동 근무를 선호하는 직원이었고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미지정 사동 담당이었는데 거실 난방화 공사로 근무지가 없어져 본의 아니게 정**이 출역하는 작업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사건이 터졌고 사건 당일 근무가 아니었음에도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서울청 소재 교도소로 전출되었는데 마음고생이 심해서였는지 사건 발생 5년 만에 암으로 사망하여 동료직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정**으로 인해 가장 허탈해한 사람 중 한 명은 천주교 교정사목 신부님이었을 것이다. 정**을 사람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온갖 정성을 들여왔는데 한순간에 무너졌으니 얼마나 실망이 크셨을까?......
수용자들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데 어떠한 환경에서도 교도관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들이 도주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서울의 한 교정시설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치질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한 직원은 입원 수속을 밟고 다른 직원 혼자 지키고 있는데 목이 마르다는 수용자의 말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갖다 주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수용자가 도주하여 중징계를 받았고,
정** 도주 미수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는 수용자를 믿더라도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함께 전해 내려 오는 오래된 얘기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떤 선배 직원이 후배 직원과 함께 수용자 한 명을 데리고 대학병원에 갔는데 후배 직원에게 이 사람은 절대 도망가지 않을 사람이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한 후 후배 직원이 수납을 위해 원무과에 간 사이에 자신도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오니 수용자가 보이지 않아 그럴 리 없다며 찾아보았지만 이미 병원 밖을 벗어나 도망간 상태였고 수용자를 지나치게 믿다가 징계를 받았는데 징계를 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수용자들을 믿고 잘해주었다는 웃픈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