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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pr 20. 2022

인테리어, 최소만 하고 살래

에디터 하레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집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코로나 시국에 자취를 시작하면서, ‘처음 가진 내 공간’을 내 취향대로 예쁘게 꾸미고 싶어졌다.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비싸고 좋아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데, 자주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어야 어떤 일이든지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오X의집’에서 원룸 인테리어를 몇 개 찾아보았다. 자취인이라면 한 번쯤은 사용해 봤거나 최소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해당 플랫폼에서는 ‘집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용자들이 꾸며 놓은 인테리어를 둘러볼 수 있다. 


  그렇게 몇몇 집들을 둘러보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꾸며 놓고 사는 거지?’ 그러다가, 공통점을 발견한다. 하얗고 깔끔한 벽과 바닥,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통창, 세련된 모듈 가구, 벽에 붙여둔 포스터와 사진들, 빼놓을 수 없는 러그… 일단 무엇보다도 짐이 적다. 아, 나는 저렇게는 못 살겠구나, 생각하며 내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간 색이 날린 듯한 핑크색 벽지, 그와 대조되는 민트색 몰딩(말이 민트색이지 사실 옥색이다), 새것이긴 하지만 조화롭지는 않은 진갈색의 새시, 칙칙한 바닥, 너구리 겨드랑이 같은 주방! (→ 너구리 겨드랑이의 출처가 궁금하다면 http://naver.me/xVlkovAm)


  물론 이 집을 선택한 것은 나다. 집을 구할 당시 생각한 가격대에서 가장 넓은 방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 구옥이라는 점은 조금 묻어두었었다. 방 안을 잠깐 둘러보고 선고를 내렸다. 불가능하다. 민트색을 좋아하지만 몰딩 색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체리 몰딩이 선녀로 보일 지경이다. 핑크색과 민트색, 꾸미고 살 사람은 충분히 귀엽고 개성 있게 꾸밀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런 마카롱 색소 같은 조합의 집은 절대 내 취향으로 꾸밀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의 시작이 하얀 도화지이고 디자인의 시작이 빈 레이어이듯이, ‘하얗고 깨끗한’ 집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비로 리모델링을 할 것도 각오하면서 본격적으로 내 취향의 인테리어를 찾아 정보의 바다를 헤맸다.  




레퍼런스와 무드 보드


  가장 먼저, 취향을 훔치는 잡지답게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레퍼런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오피스텔도, 신축 원룸도 아닌 내 집도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레퍼런스여야만 했다. 이때 고려한 것은 가능한 현재 있는 가구를 버리거나 바꾸지 않아도 될 것. 대체로 우드 & 화이트 톤이었기에 모던하고 깔끔한 스타일보다는 빈티지하거나 따뜻한 색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것저것 검색 필터를 바꾸어 가며 남의 집을 구경하던 내게 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오늘의집 집들이 (@joeeee)

  자칫 촌스러워질 수 있는 청록색 주방 타일(두 번째 사진 우측)을 오히려 인테리어 포인트로 삼고, 민트와 핑크의 대비를 이용하여 예쁘게 꾸몄다. 나는 기피하고만 있었던 색들을 활용하여 분위기 있는 집을 만든 것이다! 나도 잘만 하면 크게 고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패브릭 소품을 늘리고, 색감만 잘 골라도 많은 것을 변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레퍼런스만 보고도 나름 괜찮겠다고 생각하다니, 확고한 인테리어 취향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각 잡힌 취향 없이 흐물흐물~한 유동적인 취향의 소유자로서, 집을 통째로 바꾸기보다는 집에 내 취향을 맞추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도 채색만 하면 망하는 ‘색감 바보’지만, 이 홈 스타일링 사례를 제1의 레퍼런스 삼고 비슷한 느낌을 찾아 무드 보드를 만들기로 했다. 



나의 인테리어 무드 보드

  오X의집과 핀터레스트를 뒤져 만든 무드 보드이다. 글쓴이가 색감에 영 감이 없는 사람임을 감안하고 봐 주시길. 가운데는 현재 집의 몰딩과 벽지, 새시 색이다. 모아 놓고 보니 더 마카롱 색소 같다. 가장 먼저 민트(또는 청록)와 분홍 조합의 컬러 팔레트를 모으고, 푸른색 계열과 분홍색 계열의 사진을 모아 조합을 맞춰 보았다. ‘레퍼런스 모음집’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큰 줄기를 잡고 하나하나 사진을 모으다 보니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많은 것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분위기를 바꾸려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뜯어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고 바꾸고 싶은 것들이 늘어났다. 벽지와 장판은 물론, 몰딩과 화장실 문틀, 걸레받이까지 바꿔야 완벽할 것만 같았다. 인테리어로 시작한 일이 리모델링까지 늘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별로인 점을 몽땅 고치려면 비용, 시간, 퀄리티 중 어느 것도 챙길 수 없었다. 시작도 전에 지쳐 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예산을 정한 뒤 무드 보드를 기반으로 당장 할 수 있으면서 효과적일 것들을 고르기로 했다.


  이번 달의 수입과 카드값, 기타 고정비용을 고려하여 예산은 50만 원 이내로 정했다. 이 집에서 최소한 1년은 더 살아야 하고, 그 사이 새로운 인테리어를 시도하거나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도 있으니 한 번에 너무 큰돈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했다. 실패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최악의 상황은 산 모든 것들이 꽝일 경우. 통째로 매몰비용이 되더라도 ‘인생 경험 쓰리게 했다’고 눈물 조금 흘리고 넘길 정도로 예산을 잡았다. 


  당연히 벽지, 장판, 페인팅, 싱크대 상하부장 등의 리모델링은 일 순위로 제외되었다. 가장 확실한 변화지만 절대 혼자 할 수 없을 일이고, 꼬박 삼사 일은 잡아야 했다. 민트&핑크로 컨셉을 잡은 김에, 옥색 몰딩은 페인팅하지 않고 남겨 두기로 결정했다. 꾸미고 보면 옥색도 민트색처럼 보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빛바랜 핑크색 벽지는 조명을 죽여서 눈에 덜 띄게 하기로 했다. 커튼, 침구, 식탁보 등 다양한 패브릭 소품을 사용하여,  ‘하기’보다는 ‘사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타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취향을 전시할 새로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셀프 인테리어의 목표  

민트와 핑크의 보색, 톤온톤을 잘 섞어서 색 예쁘게 조합하기  

빛바랜 핑크 벽지 눈에 안 띄게 하기  

혼자만 초코맛인 진갈색 새시 슬쩍 가리기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만들기 


시도하기로 한 것들  

침구, 주방, 창문 등 패브릭 소품 새로 사기

집의 조도를 낮추고 간접 조명을 들여 벽지 색 죽이기

식물을 들여 플랜테리어에 의지해 보기

사진을 붙일 빈 벽이나 ‘덕질존’ 만들기 


인테리어 도면

  그렇게 만든 현재 집 구조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꾸밀 것인지, 무엇을 사야 하는지 그린 도면이다. 이것도 글쓴이가 색감 바보인 점을 고려하여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길 바란다.


  



장바구니 채우기


  구체적인 컨셉과 컬러 팔레트가 생기니 조금 더 의욕이 생겼다. 무드 보드와 예산을 기반으로 ‘오X의집’을 쥐 잡듯 뒤졌다. 현관 입구(위 그림의 우측 하단)부터 들어가는 식으로 설명하자면, 먼저 중문처럼 쓸 가리개 커튼을 하나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룸이 다 그렇지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방이 한눈에 들어오니 하지 않은 설거지, 정리 못한 책상 등 집안일이 보이게 된다. 이 커튼은 그런 것들을 마주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용도이다. 벽지 톤과 크게 대비되지 않게 핑크 선셋 이미지를 골랐다.


  다음으로는 신발장 위이다. 그동안 생수병이나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올려 두었는데, 산만해 보여서 싹 정리하기로 했다. 현관은 집을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으로 치면 얼굴 같은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좀 더 그럴듯하고 깔끔하게 꾸미고 싶었다. 까진 벽지를 가리기 위해 틸란드시아 행잉 플랜트를 샀다. 신발장 위에는 화병이나 엽서 등을 이용해 꾸밀 생각이다.


  주방 쪽에는 벽면 창문과 싱크대 앞 창문에 민트색 체크무늬 커튼을 달아 통일감을 주고, 커튼봉을 다는 김에 벽면이 비어 보이지 않도록 행잉 플랜트를 하나 달아서 싱그러운 느낌을 더하기로 했다. 창문 앞 아일랜드 식탁의 자기주장이 강한 우드 색은  베이지색 테이블 러너로 덮고, 식탁보를 레드로 골라 민트&핑크라는 컨셉에 적당히 묻어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탁과 책상의 분리였다. 책상을 따로 사지 않고 공부나 업무도 식탁에서 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책과 노트북, 충전기, 주방용품이 한데 뒤섞여 정리를 해도 정리한 것 같지 않았다. 1인용 원형 테이블을 사서 옆 창가에 두고, 책상 겸 티테이블로 쓰기로 했다. 테이블을 둘 창문의 커튼은 핑크톤으로 골랐다. 옆 창문은 민트색 체크무늬니, 여기는 핑크색 다른 무늬로 하자는 생각으로. 그 옆에는 ‘덕질 존’을 만들기로 했다. 흰색 오픈형 수납 선반을 두어 식탁 옆 책장에 대충 꽂아 두었던 앨범과 포스터를 옮겨 오고 벽에 사진을 붙여 꾸밀 계획이다. 벽걸이형 CD 플레이어도 사고 싶었는데, 예산 문제상 나중으로 미뤄 두었다.


  침구류는 민트&핑크의 컨셉을 가져다 쓰기 딱 좋았다. 녹색 계열의 베개와 패드를 두고 분홍색 이불을 덮어 나름 그럴싸하게 조합해 보았다. 그리고 조도를 낮추어 핑크색 벽지를 덜 보이게 하겠다는 계획을 위해 스탠드 간접 조명을 침대 옆에 두었다. 머리맡에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패브릭 포스터를 걸기로 했다.




이제부터 민트핑크를 내 취향으로 임명한다  


  주문한 물건을 배송받은 후부터는 박스와의 전쟁이었다. 포장을 뜯고 조립하고 배치했다가 뺐다가 재배치하고… 스티로폼 포장이 박살 나서 온 것도 있었다. 온 집안에 날리는 스티로폼을 보면서 4월에도 집 안에 눈이 오네, 하는 해학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대충 여기저기 배치해 본 결과는 이렇다. 사진을 예쁘게 찍는 취미와 특기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인테리어 전
인테리어 후

  솔직히 말하면 생각한 것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는 나름 만족하고 살 수 있다. 집을 들어서면 눈에 꽂히던 민트색 몰딩과 핑크색 벽지, 진갈색 새시가 이제는 눈에 엄청 튀지 않는다. 특히 방 불을 끄고 노란빛 조명을 켜면 전체적으로 색감이 묻혀서 편-안하다. 현관 앞에 단 가리개 커튼도 큰몫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차근차근 여유가 있을 때 덧붙이고 고쳐 나가면 된다. 


집꾸미기의 하이라이트, '덕질존'이다!

  그리고 마침내 '덕질존'을 만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신나서 이리저리 배치를 바꿔 보고 있다. 본가에 있는 앨범들도 싹 가져오고 싶어졌다. 뜬금없어 보이는 스투키와 자몽주스는 뭐냐고? 저것도 다 나름의 연관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책장과 덕질존의 분리는 기대한 것보다 더 쾌적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책장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주방 용품을 수납했고, 식탁 위가 훨씬 정돈되었다.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것은 덤. 


  인테리어라고 하기도 조금 민망한, 패브릭이 다 한 집 꾸미기지만 ‘가성비’ 하나는 확실히 챙긴 것 같다. 집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는 데는 침구나 커튼 등의 패브릭만 한 것이 없다. 1년 만에 처음으로, 좀 꾸미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집이 꼴 보기 싫은 공간이 아니게 되면서, 조금 더 애정이 생겼고 '진짜 내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내 집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연히 전세든 월세든 오래 살지도 않을 집에 투자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신경 쓸 일이 많은,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는 더더욱. 특히 나는 안정적인 수입도 없고 계약기간 만료 후의 거처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글을 쓰던 시점은 시험기간이었다.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냐고? 당연히 그랬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공간에는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껏 내 방은 단순히 밥 먹고 잠을 자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었을 뿐 안정감을 주는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아니었다. 집이 싫으면 자꾸 밖으로 돌게 된다. 집에만 있으면 보기 싫은 것들이 자꾸만 눈에 보였고, 그럴 때마다 말 그대로 ‘뛰쳐나와’ 카페로 향했다. 인테리어에 도전하겠다고 쓴 돈은, 그동안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카페에서 쓴 돈과 맞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인테리어에 쓴 비용은, 남은 1년여 동안 집에 붙일 애착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애착도 돈으로 살 수 있다니, 얼마나 가성비 좋은 방법인지. 못생긴 집이 싫다면,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기분으로 인테리어에 조금만 투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오늘의집 온라인 집들이 https://ozip.me/CjhWu3p

그 외 상품 사진 오늘의집 스토어 https://ohou.se/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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