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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실천보다 중요한 건 정치

by 황인석

이 장의 제목은 애초에 이야기했던 연재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의 취지는 개인의 노력보다 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각 개인들의 실천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자는 것이었죠. 그런 취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된 책을 읽어 보고 자료를 조사해 보면서 다시금 드는 생각은 이 장의 제목처럼 "개인의 노력보다 중요한 건 정치"라는 것입니다. 앞의 장에서도 개인의 실천이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한 번 이 대목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보통 기후위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보면, 개인의 실천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각 시민이 기후위기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일상에서 작은 실천들을 함으로써 기후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앞의 장에서 살펴 보았듯이 전체 탄소 배출에서 가정 부문에서의 노력과 실천으로 감축할 수 있는 부분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가정 부문의 탄소 배출이 전체의 16%에 불과한데, 이조차도 소비를 절제하거나 방식을 전환해서 대폭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부터 전력이나 가스 사용을 20% 이상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가용을 운전하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를 늘리는 것은 비교적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차를 갖고 계신 분들한테는 역시 쉽지는 않은 일 같습니다.

JTBC의 환경 분야 심층 취재 기자인 박상욱 씨가 2022년에 출간한 <<기후 1.5도, 미룰 수 없는 오늘>>이라는 책에서는 국제에너지기구의 자료를 바탕으로 전세계 탄소배출량 감소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주요 변화들을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전력 생산에서 화석연료 비중을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전력 생산 부문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총배출량의 3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증대한다고 하면 18% 이상의 절감 효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력 생산의 에너지원 구성에 대한 결정과 실행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측면, 경제 측면, 기술 측면, 형평성 측면을 모두 살펴 효과적인 전략을 수행하고 의지를 갖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밖에 전기차 비중을 확대하고 내연기관 차량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대체하도록 하는 것, 석유화학제품이나 철강, 시멘트의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도록 건축 규제를 하는 것 등이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영역들입니다. 우리가 소비자 입장에서 플라스틱을 줄인다거나 하는 노력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시멘트나 철강의 소비를 개인 차원의 실천으로 대폭 줄이는 일은 어려울 것입니다. 탄소배출량 감소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는 신기술의 개발과 적용이고, 또한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에게 그러한 노력을 하도록 지원하고 규제하는 정부의 정책입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정부에게 그러한 노력을 요구하고 감시하며, 그런 노력에 따르는 전기요금 상승이나 세금 부담을 감수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개인적인 탄소배출량 절감 노력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이 모여도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의지와 관심이 모여 정부의 의지와 정책으로 전환된다면, 그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탄소배출량 감소에 기여하기 위한 개인적인 실천의 노력들은 그 실질적인 효과보다도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는 자기 정체성의 확립에 대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질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약간의 희생만 따르거나 습관만 바꾸면 되는 일들조차 실천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을 갖는 시민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삶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을 실제로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을 더 찾아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 정치'에 대한 관심일 것입니다. 시사인 2024년 3월 기사를 보면, 문재인 정권 시기에 탄소중립을 선언할 무렵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이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2024년 총선을 앞둔 공약에서는 민주당이 기존 공약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친 데 반해 국민의힘은 '괄목상대'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기후 정책들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편 총선 때 국회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한 녹색정의당은 한달에 만원으로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약을 내놓았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언론 기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고 여론의 관심도 여러 정치 스캔들에 주어지는 관심의 10%도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정책들을 갖고 시시비비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수록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전해지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의 움직임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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