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use I'm free, nothing's worrying me
앞의 글들에서 언급되었던 주제이지만, 자유가 행복보다 더 나은 지향이라는 근거를 다시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행복을 지향하는 것의 문제점은 행복이 선택의 기준으로서 사용되기에 큰 약점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먼저 행복을 일종의 감정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 감정을 경험할 때에만 알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불완전하게 회상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몇 개의 한정된 음표에서 수없이 다양한 음악이 나오듯 행복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경험도 감정의 기본요소들은 비슷할지 몰라도 무척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행복의 경험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대안이 제공할 수 있는 행복의 양을 비교하여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울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근본적 차원의 문제점을 더한다면, 그 다양한 종류의 행복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그것이 반드시 지향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불행한 감정들을 피하고 행복한 감정들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하지만 자연스럽다는 것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선택을 하는 과정을 깊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고민 없이 선택을 한다면, 믿음이든, 충동이든, 우리가 갖고 있는 요인들에서 비롯되는 직관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것, 습관을 반복하는 것,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평소 갖고 있던 원칙에 부합하고자 하는 것, 이런 여러 성향들이 종합되어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뿐이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녔다는 것은 좋은 기분을 갖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처럼 우리의 다양한 성향들 중 일부를 뭉뚱그러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충분한 안정감을 주는 직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평소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예측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시도할 것이나, 그것은 선택을 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선택은 행복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선택의 방식이 되기 쉽다.
다시 말해, 뭉뚱그려진 좋은 경험의 총체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원의 어려움이 있고, 자연스럽지도 않으며, 그렇다는 착각을 하기 쉬우나 따라야 하는 의무나 책임이 될 근거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선택과 노력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당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자유를 정의하는 한 방식이다.
우리는 추구하고 싶은 걸 추구하면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냥 이 순간 추구하고 싶은 걸 추구하는 자유를 누리면 된다. 그것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펼쳐 내는 일이다.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충동을 따른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목표와 원칙 등에 대한 믿음과 욕구와 감정과 논리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얻어지는 직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선택을 하는 대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노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아는 기반은 직관이다. 직관을 믿고 행동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
즉, 행복 대신 자유를 지향한다는 것은,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이 가리키는 옳은 방향,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행복의 견지에서 보자면 우리는 더 나은 행복의 기회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부자유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유를 지향한다면, 어디로 나아가든지 그 자체로 충분한 삶이 펼쳐진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경험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행복 관점에서는 제약이지만, 자유롭게 사는 삶 속에선 축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