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글 좀 잘 쓰시나요?"
"응?"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는 도중에 동료가 내게 사탕을 하나 주며 뜬금없는 걸 물었다.
"글요. 인스타그램에 쓰는 글 말고, 창작글요."
"왜? 소설이라도 쓰려고?"
"그게 아니고, 요즘 책이나 유튜브에서 글쓰기를 하라는데 저는 잘못해서요."
질문에 '그저 연습 말곤 다른 건 없겠지'라고 대중없이 대답을 해줬지만, 평소 책이나 글쓰기에 관심 없던 친구가 물으니 좀 당황스러웠다. 글쓰기가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인가? 얼마전에 '역행자'를 읽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글쓰기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후배는 그 책을 읽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내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어떻게 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 어느 날 문득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를 대충 만들고 그날 무작정 어설픈 글을 올렸었다.
작년 이맘때였는데,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없이 키보드를 두드렸었다. 무작정했다. 지금이라면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지식을 대충 그러모아 준비를 했을 테지만. 지금도 글은 어지럽고 장황하지만, 블로그에 올린 첫번째 글을 보니 요즘 글은 정말 양반이었다. 글을 쓰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심오하고 철학적인 글을 적으려 했는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렸었다. 가끔 다시 읽어보지만 심각한 중2병에 걸린 사람이 중얼거리는 ..... 솔직히 지워버리려 했지만, 일부러 남겨뒀다. 큰 의미는 없지만 그저 처음은 남겨두고 싶었다.
그럼 다시 처음 질문. 글쓰기는 어떻게? 솔직히 사람들은 뭘 하기 전에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등산을 하려면 등산 장비를,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화와 이런저런 운동복들, 체육관을 가려면 .... 사람들은 시작도 하기전에 너무 먼 곳을 바라본다. 아직 산 입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산 정상을 걱정하며 설레발을 친다. 그리고 이것저것 젠다.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상황을 상상한다. 일어나지도 않고, 가능성도 없는 그런 상황을. 한마디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냥 하면 되는데.
글을 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노트에 쓰거나 블로그 즉, 컴퓨터에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처음부터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블로그 아이디도 '글짓는 키보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사전에 위험요소를 대비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을 한다. 당연히 위험요소가 많은 불확실한 일은 이렇게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위험요소가 없다. 하나도 없다. 굳이 찾으려 머리를 굴려보아도 뚜렷하게 생각나는 게 없다. 예전 독재국가 시절이었다면 좀 특이한 생각은 불온한 사상이라며 어딘가로 잡혀갔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불온한 사상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해선 훌륭한 문장가여야만 가능하다.
글쓰기는 꾸준히 해야 한다. 글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분야다. 난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얼마 전까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려왔다. 근 1년간.다만 최근 두 달동안은 개인적으로 좀 난감한 일이 있어서 게으름을 부렸지만, 이제는 다시 매일 올릴 예정이다.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둘째 날이다. 첫째 날은 의기충천해서 글을 쓰지만, 둘째 날은 글쎄? 사람들은 작심삼일이라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두 번째가 가장 어려웠다. 내 글쓰기를 막아서는 교활하고 강력한 수문장을 이겨내야만 그제서야 글쓰기 관문에 비로소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문장은 생각보다 강력하니 절대 만만히 여기지 말길 바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따라서 움직인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는 진리겠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내 마음은 겁쟁이고, 몸은 게으름뱅이라서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실행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엔 마음이 까불거리기 전에 게으름뱅이 몸을 강제로 내세운다.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마음이 뒤따를수밖에 없게 만든다.
솔직히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그래서 일부러 여기에다가 도장을 찍었다. 마음이 무를 수 없도록.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글쓰기는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글쓰기 기술이나 주제, 소재를 걱정하지만 그간의 부족한 경험에 비춰봤을 때 하려고 하면 됐다. 어거지로 짜내면 된다. 무책임한 글로 보이겠지만 나는 그랬다.나는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그냥 매일 적다 보니 적은 분량의 글이라도 적을 수 있게 됐다.
어질한 글이 됐지만 나는 글쓰기를 이렇게 했다. 그리고 둘째 날도 아무렇지 않게 수문장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