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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Oct 19. 2022

미운 단어

사랑? '사랑'이란 단어는 사람들에게 애용되는 되지만 저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런 우울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급적이면 긍정적 마인드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애정표현을 사랑이란 단어 대신 곰살맞은 표현과 행동으로 대신할 뿐이죠. 


생각해 보면 저는 널리 대중에게 유명한 단어와 친하지 않았어요. 특히나 사랑. 어릴 적 저에게 사랑은 티브이나 영화, 소설 속에서나 사용하는 단어였죠. 잘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속삭이는 사랑은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족 중에 유독 저만 이런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나 엄마는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으셨죠. 그렇지만 사랑이란 단어 대신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일을 나서는 행동으로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부모님, 특히 엄마는 아침에 못 보면 해가 질 무렵에나 간신히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모든 집의 엄마는 낮 동안은 일을 나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우리 집만 그랬다면 다르게 생각했겠지만, 동네 또래 친구 집 역시 저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낮 동안 못 보는 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눈앞에 아련하게 그려집니다. 엄마의 아득한 미소가.


해  질 녘이면 친구들은 하나, 둘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저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 언덕아래로 길게 이어진 좁은 길을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친구들 엄마는 모두 왔는데 아직 오지 않는 엄마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에 울먹였어요. 이제나저제나 오려나, 날이 어둑해질 무렵까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언덕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는 내 그림자만 원망스레 쫓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발갛게 물드는 하늘빛이 왜 그렇게 밉고 싫던지.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는 시내버스 정류장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넓은 광장을 지닌 시민회관을 지나면 낡은 콘크리트 다리가 윗동네와 아래 큰길가를 나누는 갈림길이었죠. 오른쪽은 큰길가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왼쪽 좁은 골목을 지나야 우리 집을 갈 수가 있었죠. 하천을 병풍으로 듬성하게 들어서 있는 허름한 상점가가 골목을 지나야만 제가 서있는 언덕이 아스라이 간신히 보였습니다.


엄마를 마중하러 언덕을 내려가 넓은 광장 옆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고 싶었지만, 겁이 많았던 저는 갈 수가 없었어요. 사람이 겨우 다닐 길만 내주고 하천 옆으로 허름하게 서있는 그 건물들을 지나가는 게 무서어요. 해가 완전히 진 언덕 아랫길은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을씨년스러운 곳으로 보여 소심한 겁쟁이였던 전 차마 그 골목을 지나가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상가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완전히 암흑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해가 지면 그 골목을 무서워했는지. 게다가 오가는 사람도 제법 많았었는데...


듬성히 기괴하게 새어 나오는 새파란 불빛에 온갖 상상력을 덧댄 저는 골목 입구에 있는 가로등 주위만 서성거리며 엄마가 빨리 오기만 기다렸어요. 어서 저기에서 저를 위협하는 무서운 불빛을 헤치며 엄마가 나타나길 바랐죠. 그러다 저 멀리 골목 어귀에 사람기척이 들리면 엄마일까 하는 기대에 두근거리며 소심하게 까만 그림자가 파랗게 변할 때까지 쳐다봤어요. 하지만 기다리는 엄마는 오질 않고 애먼 사람만 눈빠지게 쳐다보다 눈총을 받기도 했었죠. 어쩔 수 없이 하얀 페인트가 다 삭아버린 낡은 난간에 기대어 전에 내가 파다만 애꿋은 땅바닥만 팠어요. 흉흉한 기운으로 저를 위협하는 골목을 외면한 채 엄마가 오기만 하릴없이 기다렸죠.


섭섭함에 흘리던 눈물이 말라 얼굴을 간지럽게 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볼을 긁적이며 지루함에 가로등에 붙은 낡은 광고만 쳐다보고 있던 그때, 저만치 골목에서 또다시 인기척이 들렸어요. 


"엄마!"


아무리 옹색한 불빛이라도 엄마의 실루엣을 모를수가? 색색으로 일그러지며 저를 겁박하던 불빛따윈 상관않고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막둥아! 깜깜한데 왜 여기 있어? 응? 무섭지 않았어?"


사랑? 내게서 멀리있는 사랑이란 단어보다 엄마가 불러주는 '막둥이'가 훨씬 가슴이 설레고 애달픈 진한 감정을 준다.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주고 눈물이 말라붙은 내 볼을 애틋하게 쓸어내는 까슬한 손길이면 충분하다. 나를 향한 애정과 걱정 그리고 미안함이 아낌없이 녹아있는 '막둥아'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제 불러주는 그립고 그리운 이가 없어서 '막둥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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