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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Oct 02. 2022

갈무리된 본능

본능은 인간에게 가장 우선하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탐욕, 생존, 안존, 성욕, 종족 번식 등 이루 늘어놓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그럼 우리가 본능이라 칭하는 감정, 이를테면 탐욕, 생존 같은 것들 중에 인간에게 가장 우선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답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내가 바라는 첫 번째는 무엇인지 고민해 봤다. 내 무의식과 자의식의 심연을 차지해 내게 무얼 바라서 삶을 강요하는지를. 난 무엇이 우선일까?


고민해 보니 목적 없는 무한정한 탐욕이다. 말 그대로 욕심쟁이다. 그렇다면 난 탐욕적인 인간일까? 맞다. 요즘 세상은 돈이 있으면 마음과 몸을 굴욕과 허탈, 그리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으니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럼 나만 그런가? 그건 아니다. 요즘 뉴스에서는 환율상승으로 인해 코스피지수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고 매일 보도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면 화재가 될 일도 없다.


허면 사람들은 대놓고 자신의 탐욕을 드러낼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거리낌 없이? 물론 벌거숭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본능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잘 숨기는 사람을 성숙하고 침착하다고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우리는 어른처럼 행동하려 한다. 체면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감정을 숨겨서 은밀하게 자신의 본능을 분출한다. 좋은 사람인 척, 성숙한 사람인 척, 욕심 없는 사람인 척 또 다른 자아 페르소나를 얼굴에 뒤집어쓴다.


그럼 본능은 억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인간은 원색적인 탐욕으로 세상을 일구어 발전해 왔다. 자신의 생존과 안정을 위해.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욕망으로 자신의 안정과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과 짐승, 적과 거칠게 투쟁하며 살아왔다. 정해진 규칙따윈 없는 야생의 시대에는 거칠 것이 없었으리라. 규칙이라는 칼날에 예쁘게 조각된 현대인의 탐욕과는 질적으로 달랐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자신을 막는 것들을 제거하며 희열을 만끽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수의 것과 같은 탐욕은 안정화되고, 규격화된 사회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레 생성된 규칙에 의해 날 것 그대의 것을 내비칠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약속을 하면서 제어되고 다듬어진 탐욕은 다른 페르소나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능숙한 도공이 되지 못한 자는 도태되었을 테고.


하나보단 둘 또는 셋, 그리고 무리를 만들어 포식자를 사냥하고 내 영역에서 쫓아내고 물리쳐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덩치를 크게 불려야만 자신의 가족과 친구, 부족을 지킬 수가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제도, 규칙에 원색적인 본능은 패배하고 이성이란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렇다면 본능은 착하게 길들여져 온순해졌나? 맞다. 상대방에 직접적인 표출은 어느 정도 제어된다. 하지만 본능은 새로운 파괴 대상을 찾았다. 스스로를 욕망하고 파괴한다. 탐욕은 용맹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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