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교사 일을 하면서 종종 학기 마무리를 하며 진행하고 있는 도서관 행사가 있다. 그건 바로 올 한 해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또는 집에서 읽었던 책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감명 깊었던,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르고 도서관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보는 행사이다.
즉석카메라로 책과 함께 포즈를 취한 후 당일 찍고 바로 주기 때문에 행사를 위한 카메라를 사고 필름을 사는 일이 학기말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12월 한 달 동안 행사를 진행하였고, 많은 학생들이 다녀갔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책을 고르고 사진을 찍어주고 있노라면 어느새 학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어느 날 3학년 남학생이 찾아와 시집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시 수업시간이 아니라면 시집을 일부러? 찾는 학생은 드물기 때문에 위치를 알려주고 궁금하여 살펴보니 많은 시집 중에 특정 책을 금세 골라내는 것이 아닌가? 참고로 우리 도서관에는 4칸이 꽉 차게 시집이 소장되어있다. 한 칸에 책의 두께에 따라 약 30-50여 권의 책이 들어가니 100권넘게 시집이 있는 셈이다.
이후 사진 이벤트를 지금도 찍을 수 있는지 물었고, 그 책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시집이 올해 인생 책이라니!! 범상치 않은 학생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에 방문하였던 아이들과는 달라 인상이 깊어 왜 시집을 골랐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2학년 때까지는
책을 좋아했거든요??
근데 3학년이 되고 나니
책이 재미가 없어진 거예요.
그러다가 우연히 이 시집을 봤는데,
그 이후로 책을 읽는 게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이 시집이 제 올해 인생 책이에요!
짧은 말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통 초등 2학년이 넘어가면, 권장도서나 필독도서, 그리고 교과서 수록도서들이 그림책에서 글책으로 많이 전환된다. 아이가 나에게 직접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급격하게 책 환경이 변화되는 시점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으리라.
그 시점에서 우연히 접한 책이 시집이라니! 그 아이의 책 인생에 시집이 추억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풍성한 초등생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의 책이 시집이라고 골라준 학생의 일화도 기억에 남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 남기고자 했던 학생도 너무 기특하고 놀랍다. 올해에는 4학년이 되는 그 학생이 앞으로도 어떤 책을 골라줄지 기대가 된다. 시집이 그 학생의 독서습관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독서의 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