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지 Jan 27. 2022

남편의 이상형

남편은 10년 후 시 팔이가 될까?

10대나 20대의 이상형은 보통 연예인 중 누구와 이미지가 비슷한가 정도로 압축된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아 원하는 이미지는 있어도 현실의 이성은 없다. 30대엔 그 '이상'이라는 틀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이다.


어떤 이는 이 무너져 내림의 자구책으로 리프팅을 시도한다. 또래의 여자들은 점점 자신의 짝을 찾아 떠나는데 남자들이 눈에 담는 건 아직 사회의 때가 덜 묻은 어린 여자들 뿐이다.


남편은 결혼하고 이상형이 바뀌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좋다고 한다. 그럼 난 아니란 소린가? 정답이다. 남자의 배려는 흔해도 여자의 배려는 희소성을 지닌 탓이다.


남편은 자신이 만나본 이들 중 김남주 배우가 상대를 편하게 대할 줄 아는 이였다고 말한다. 업무 관계로 만나도 어떤 이는 자신을 노예처럼 대하는데 그녀는 사람으로서 존중해 주었다고 다. 재모 엄마와 현정이 누나도 그러한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다.


"당신 요즘 퇴근하면 집안일 손도 안 대더라"


집에 오면 손도 안 씻고 아이들 안아주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더러운 기계, 화물차 타던 손으로 아이들부터 만지다니 도대체 상식이란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남편은 오전 7시 15분쯤 출근해 12시간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 갖기 전, 업무가 많지 않은 날에는 일찍 퇴근해 함께 커피도 마시러 다니고 좋았었는데, 요즘엔 하찮은 글이나 써보겠다며 새벽 2~3시부터 일어난다. 예전엔 출근하기 전, 전 날 먹은 설거지며 분리수거, 각종 쓰레기도 가지고 나갔었는데 지금은 샤워 후 사용한 수건도 화장실에 그대로 두고 나온다. 몇 번을 세탁실에 갔다 놓으라 말했는데도 도무지 알아듣질 못한다. 뇌가 없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남편은 확실히 결혼 후 달라졌다. 신혼 초엔 세면대와 변기를 양치질하듯 차인표처럼 거칠게 손을 흔들어 재꼈었는데 지금은 신구 아저씨처럼 4주 후에 청소하겠다고 다. 아이들 빨래, 색깔 빨래, 흰색 빨래, 이불 빨래로 지치고 힘들어 술 좀 빨라고 술 좀 사오라고 시켰더니 고개부터 숙인다. 아직 숙여야 할 나이가 아님에도 집에만 오면 남편은 숙연해진다. 내가 고해성사 들어주는 신부님도 아니고, 또 입고 온 작업복 그대로 입고 나갔다 올 것이지 꼭 외투를 갈아입는다. 슈퍼 아줌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모양이다. 재수 없어. 그 아줌마 나보다 가슴 크면 단가? 부럽다.


내일 아침, 식탁에 쪽지가 놓여있더라.

'노예로 대하는 이에게 자비란 없다. 남편을 사람답게 대해라. 아내 규탄 성명서'

최수종이 될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 남편의 아침편지.

남편은 시 팔이가 되어도 손색없을 만큼 새벽에 헛짓거리나 하고 식탁에 앉아있던 게 분명하다. 내 이놈의 다리몽둥이를 아주 그냥 흥부의 볼기짝처럼 강하게 후드려 쳐야 예전 온순했던 노예로 돌아가지, 도무지 빡이 차올라서 안 되겠다.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여보 안전히 일하다 와용^^ 퇴근 후 할 말 있어용 빨리 들어와요~


요즘 아내가 무서워 집에 빨리 퇴근하지 못한다. 오늘도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오니가 거실에 앉아 울고 있다.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새다. 아마 아이가 밥 먹다 말고 장난치며 놀았겠지. 손 좀 씻고 달래자니 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눈빛이 애처롭다. 손부터 씻고 가자니 아이가 더 울어버릴 것만 같다. 나라도 안아주고 달래줘야지. 어김없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다행이다. 불똥이 나에게 튀어서, 아이는 한 숨 돌리며 다시 웃는다. 언제 울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는다.


꼭꼭 숨어도 보일만큼 아이들은 아빠를 사람처럼 대한다. 그 게 고맙고 또 가엽다.


이전 06화 넋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