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버리는 용기
나는 자식을 갖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다. 힘들게 가진 아들이 태어나는 그날, 아주 우량한 아기가 내 품에 안길 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종류 감정이 뭉탱이로 엮여 기쁨, 설움, 환희, 감격, 감사, 울분이 한꺼번에 팡팡 터지며,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일시에 펑펑 우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산모님, 지금 웃으시는 게 아니고 우시는 거죠?" "몰라요. 웃는데 자꾸 눈물이 쏟아져요."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가야, 이렇게 온 것만으로 넌 다 한 거다. 나에게 모든 걸 줬다.'
감정이 과했던 걸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이걸로 다됐다는 안도감이 너무 설레발이었던 걸까.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아들이 상상치도 못했던 아우라를 뿜어대며 내 인생을 쥐고 흔드는데, 그때부터 내가 뭘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버라이어티 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자식을 기다리며 '난 저렇게 양육 안 해, 어떻게 아이를 저렇게 키우지? 부모는 뭐 하는 거야?'라며 속으로 욕했던 어린애들의 모든 호작질과 저지래를 우습게 만드는 '탑 오브 탑'이 바로 내 아들이 될 줄이야. 길바닥에 드러눕고, 다른 아이들을 할퀴며, 어디서든 울음과 괴성으로 주변을 제압하는 아들 때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숨 쉬듯이 하고 다녔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자식이 '아웃 오브 컨트롤'이 되면 부모가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내적 외적으로 그냥 쭈그리가 된다.
Ball and Chain
그래, 난 늘 쇠뭉치 같은 열등감의 족쇄를 차고 살고 있었어. 다들 가볍게 걸어갈 때 발에 달린 쇠뭉치를 탓하며 늘 '힘들어, 힘들어' 하며 주저주저했던 거,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열등감을 숨기며 쎈 척하고 살아왔는지. 나이를 먹으면서 쇠뭉치의 종류만 바뀔 뿐, 하나를 풀면 곧바로 다른 걸 찾아서 채우며 난 스스로 나를 옭아맸었다. 지금은 '아들'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 '영어'였고, 어렸을 때는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잘할 수 있게 되는 나의 느림'이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무 노력 없이 한 번에 잘하는 게 없는 내가 너무너무 싫었었다. 공기놀이의 뒤집기 같은 시시한 것도 한 번에 안돼서 혼자 방에서 손등이 빨갛게 될 때까지 뒤집고 뒤집어 봐야 그나마 놀이에 낄만한 정도가 되는 게 나였다. 뭐든 늘 빨리 습득하는 오빠한테 눌려서 '나는 바보인가'라는 대명제를 깨고 깨고 깨고 나오는 게 나의 삶이었달까. 그나마 지독한 악바리 근성 하나로 남들이 잘 산다고 하는 정도의 높이까지 겨우 올라왔는데, 지금 내가 분신같이 귀한 아들을 내 발목에 채워서 새로운 족쇄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퍽! 들었다.
이건 아니지. 나 자신을 탓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들 탓을 하려는 거냐.
<난 왜 이 정도야> 타령, 이젠 그만하자.
내가 어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나 처지, 노력해도 쉽지 않은 능력의 한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의무 등,,,
나의 노력으로 해결이 안 되는 종류의 것들은 '나'라는 실체 밖으로 내려놔야 한다. 그건 내가 처한 환경이고 내가 가진 조건이지, 내가 아닌 거다. 그런 환경에서 그 정도의 능력으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가 대단한 거지. '네가 내 입장이 돼봤냐? 나니까 이 정도 하는 거다. 너나 잘해라.'
<못하는 나>가 아닌 <애쓰는 나>를 나의 실체라고 생각하니 그 노력으로 인해 이룬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능력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노력이 나라고 생각하니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많이 이루면서 살아온 거지. 힘차게 살다 보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다 해결하고 이루어낼 거야. 늘 그래 왔잖아.'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프로젝트의 결과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귓등으로 스쳐갈 뿐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화장실에서 직원들이 하는 내 뒷담화에 칼 꽂은 농담으로 응수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된 게 말이다. 정신과의사, 심리상담사, 종교인들이 귀에 딱지 앉게 하는 말. '인생철학을 갖고, 거절당하고 실망한 뒤에도 툭툭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고, 얼른 포기해야 할 하위 목표와 좀 더 고집해야 할 상위 목표의 차이를 두고 장기간의 열정과 끈기를 유지하라고.' 이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고 그와 비슷하게 살게 됐다.
예전의 나처럼 마음이 약하고 귀가 얇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 족쇄를 끊어버리는 용기를 가져보라고.
못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그것이 안 하고, 다 잃어버리고, 도망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노력하는 나를 응원하고 나의 환경과 조건에 맞서자고.
그게 내 힘으로 만든 내 진짜 자존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