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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Oct 25. 2022

친구는 계절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닮은 친구들


공주 석장리계절별꽃단지


가을이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가장 여유 있는 가을이다. 내가 했던 업무인 지자체의 공공 입찰은 사업이 4분기에 집중해서 쏟아지는 게 다방사였기에 단풍놀이, 추석, 크리스마스, 연말 모임은 20년 넘게 삶에서 지워진 단어였다. 뭐 사는 게 바빠서 계절이 의미가 있는 날들이 아니었던 게 맞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가을인가!  난생처음 꽃이 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꽃놀이를 갔다.

소싯적 와구와구 먹고 있는 날 볼 때마다 엄마가 내 뒤통수에 대고 하시던 푸념 아닌 푸념이 있었다.

"딸을 낳으면 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컥, 그때마다 나는 늘 굴하지 않고 반격했었다. "나보고 왕 대가리로 자라라는 거야? 비틀비틀거리면서?"

그랬다. 그 말이 의지가 된 건지, 나는 얼굴만 작고 몸은 그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짧고 굵게 자라났다.

코스모스만 보면 엄마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가을을 담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쓰러질 듯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사이를 절대 우위의 튼튼한 다리로 헤집고 다니며 한참을 동심 찾기 놀이에 빠져 있다 보니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요히 반짝이는 금강과 어우러져 색을 물들이고 있는 나무와 높고 푸른 하늘이 가을이라는 그림으로 펼쳐진 풍경.

'너무 잘 어울린다. 조화와 균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색을 잃어가며 곧 우수수 모두 떨어질 낙엽을 아슬하게 품고 있는 큰 나무 밑에서, 초가을에만 잠깐 얼굴을 비추는 코스모스는 '떨어질 낙엽에 대한 봄빛 위로'가 되겠구나.'  


나무는 제 잎새를 모두 떨구어 휴업을 준비하기 때문에 봄에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무의 성장은 겨울눈도 봄의 새잎도, 꽃과 열매도 아닌 앙상하게 모든 잎을 버리는 가을 나무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무는 계절의 기온 변화에 살아 남기 위해 여름 내내 키워 온 자신의 겉옷을 버리고 전면 휴업에 들어가야 봄에 다시 싹을 띄울 수 있는 게 자연의 이치.


사람도 그렇다. 예전의 모난 나를 버리는 기회와 사색의 시간이 있어야 새로운 내가 된다. 새롭게 성장한 내가 새로운 하루를 만들 수 있다. 나무에게 가을의 일조량과 찬 기온이 변화를 가속시키듯 사람에게는 생애주기를 함께 해온 오랜 친구가 나를 변화시키는 기회가 되어 준다.


도종환 시 '단풍 드는 날', 백향 캘리그래피





친구는 계절처럼 스며드는 거 같다.

봄처럼, 여름처럼, 가을처럼, 겨울처럼 친구는 서로의 삶에 스며들며 우리의 인생을 다채롭게 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같이 보낸 시간도 그 깊이도 다 제각각이지만 각기 다른 온도로 내 곁에 있어 주어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생각했다.

 '사람이 살면서 내 옆에 두어야 할 친구의 정의를 각각의 풍경을 가진 계절에 비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을


성장기를 함께 하며 서로의 못볼꼴을 다 보고 같이 자란 생애주기 속 찐 동료, 불알친구(? 이보다 찰떡같은 표현을 찾을 수 없음)는 가을을 닮았다. 예민한 사춘기부터 서로 의지하고 웃고 삐지고 다투고 화해하며 함께 자란, 서로의 인생사에 주요 등장인물이다. 나는 그 친구들을 통해 내 모난 점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나는 그 가을 같은 친구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무리 좋아해도 한 사람을 독점해서 가질 수 없기에 사람에게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는 그 사람의 말과 생각을 수용할 정도의 융통성이 내 뇌에 생겼을 때 입을 열어야 한다는 것, 답정너처럼 내 맘대로 할 거면서 푸념하는 식으로 조언을 구하면 안 된다는 것!

-사소한 돈거래도 친구 사이에는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순간 욱해서 짜증과 막말이 나올려는 때는 내 손으로 내 싸다구를 날려서라도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소중한 이에게 욱하며 뱉은 말은 후회만 남기기에 사전에 나를 욱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리스트업 해서 늘 복기해야 한다는 것!

-자존심은 인간관계의 적이다. 고로 '내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선 그 앞에서 납작 엎드려 사과할 때 오히려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쥐뿔도 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내 자존감은 그 밑동부터 흔들리기 때문에 미안해, 잘못했어, 고마워라는 말은 솔선해서 해야 한다는 것!

-내 가치관과 상반되는 행동과 결정이라도, 내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다는 것!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진심은 전달된다는 것!


어릴 적 친구들은 정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됨됨이에 대한 평가에서 제외되는 대상이기에 서로의 행동에 대해 "저거 저거, 또 저러네~"하며 그러려니 봐줄 수 있다. 가족과는 다른 의미로 내 속내를 공유하는, 진심으로 나를 내려놓고 평생 함께 가야 하는 대상이다.



#봄


가을 같은 친구가 나의 과거를 만들어 왔다면, 반대로 미래를 함께 걸어갈 친구는 봄처럼 찾아온다.

그들은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조직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다. 엉거주춤하고 서있는 나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인생의 시공간은 강물과 같아서, 삶의 시계가 물살처럼 흘러 내려갈 때 나를 계속 다른 장소로 옮겨 놓는다. 거기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우리는 그곳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들추기 싫은 아픈 기억이지만, 나는 세 번의 유산을 반복하면서 오직 임신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위해 모든 일을 접고 집에 틀어박혀 산부인과와 집만 왔다리 갔다리 하던 암흑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친구들 모두 직장을 다니거나 육아를 하고 있었기에 나와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너무나 외로워서 네이버 불임 카페만 쳐다보며 살다가 큰 용기를 내어 한 분에게 쪽지를 보내고 민망한 만남의 약속을 잡았더랬다. 나는 참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날 밤 그분에게서 날아온 쪽지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임신을 했노라며, 미안하지만 못 보겠다는...'


그 즉시 나는 우울의 늪에 꼬꾸라졌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그때의 내가 느끼는 나의 모습은 '팔다리가 다 잘려나가고, 몸뚱이에 부실한 자궁만 남아있는 듯한...', 최악의 암흑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그 상황이 타의에 의한 것임을 인지하고 자의로 내가 숨 쉴 수 있는 장소를 최대한 찾아갔어야 했다. 그래서 나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만남을 만들었어야 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떨쳐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어야 했던 거다.


결국 나를 구원한 건, 남편과 함께 창업한 회사였고 남편은 사업을 통해 나를 그곳에서 꺼내놨지만 사람을 통해 위로받지 못한 나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새로운 사람은 봄처럼 새해의 새 기운은 몰고 온다.

내가 지금 어둠 속에 있다면 새 기운을 받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맺길 권한다. 그건 내 고달픔으로 내 옆에 있는 나의 사람들을 한 없이 괴롭히지 않는 방법도 된다.

그래서 대전에 이사 온 지금, 나는 촉수를 세우고 이곳의 봄을 닮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여름


한여름의 바캉스처럼, 만나기만 하면 장난과 농담으로 시름을 잊게 해주는 꾸러기 친구들도 있다.

그들 앞에서는 고민도 내려놓고,,, 어쩔 땐 40대의 나이도, 얄팍한 체면도 가볍게 내던지며, 꺌꺌꺌 웃고 떠든다. 언제 만나도 항상 즐거운 이 친구들은 나를 리플레시해주는 여름 바캉스 같다.


학창 시절에 수업 땡땡이치며 떡볶이 먹고 만화방 가서 시시덕거리듯이, 놀 때는 사고를 치며 놀아야 그 맛이 배가 된다. 어릴 때처럼 나를 잊고 정신없이 놀아야 신이 나는 법.

이걸 이 나이에 같이 도모할 수 있게 일탈의 코드가 맞는 친구들이 내 옆에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회춘의 명약이다.

 

흔히들 중년부터는 놀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중턱을 넘어가며 삶에 해학이 없으면 빠싹 말라서 무미건조해진다. 잘 노는 자가 행복한 자다.

고로 나와 유머 코드가 맞는 친구는 장롱에 잘 간직해 뒀다가 특별한 날에 곱게 꺼내는 보석 같은 존재라 보면 된다.



#겨울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은, 서로의 마음에 똑같이 시린 곳을 품고 있는 겨울 같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 시린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공정'인 건지, '위로'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굴러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내가 차마 쉽게 꺼내 놓을 수 없는 아픔이 있는데, 그 아픔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속을 터놓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복이다. 동질감 그 자체로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의 한 걸음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나라 잃은 국민이 같이 품은 깊은 망국의 동질감은 의병단을 만들고, 독립투사를 기르고, 결국 대한민국의 위대한 기적을 만들지 않았나.


서로 의지하며 이 시린 겨울을 보내고 나면,

'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꽃피는 봄이 오면'

친구야! 우리의 아픔도 기적을 만들지 않을까.

나와 같은 시린 겨울을 품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힘이 된다.

                    




여중,여고를 나온 사람은 모두 공감할 거다. 단짝이 누구랑 친해지는 꼴을 못 봐서, '나보다 소중해? 나보다 친해?'라며 울고불고, '너의 비밀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하노라, 쟤랑 놀지 마라~엉엉~~'  막장 드라마의 사랑싸움보다 더 유치한 친구 쟁탈전이 왕왕 벌어지는 우정의 무대라는 걸. 


나도 그 시절 단짝에 대한 깊은 소유욕으로 눈물짓던 밤이 있었더랬다. 앞서 열거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친구 역할 모두를 한 친구에게 요구하며 정복욕이 하늘을 찔렀던 시절. 

마치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듯 그녀와 나를 동일시했던 여고시절의 이기적 감성은, 졸업 후 사귄 남자 친구의 나에 대한 집착으로 고스란히 되돌려 받게 된다. 집착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진저리가 나는지 뼛 속까지 체감하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그 뒤 대학생활, 사회생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삶의 궤도를 따라가며 사람에 치이고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얻은 것은, 인간관계는 모두 상대적이기에 그 어떤 관계도 가벼울 수 없다는 것!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친구의 옥석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친구들>을 모두 가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란 인간에게 하나씩 서로 다른 역할을 쥐어주는 그대들은... 모두 다....


만나면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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