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술을 그만 마시자고 결심한 건 꽤 오래됐다. 이 나이까지 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내 남은 시간과 몸뚱이에 대한 범죄라는 확고한 답을 내리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네이버 카페 [금연금주나라]에 가입했다.
남편이 알면 '참 가지가지한다'하겠지만 이 카페는 볼수록 신세계였다.
술, 담배는 기본으로 깔고 수집, 게임, 운동, 일, 음식 등 무언가에 하나 이상씩 꽂혀서 살아가는 중독자 성향이 짙은, 지극히 나 같은 사람들이 무려 6만 5천 명이나 모여있었다.
'이래서 동호회를 하는 거구나~'
보다 보니 나와 잘 맞을 거 같은 몇몇이 추려지기 시작했다. '오호!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이 사람은 술 말고도 이런데 꽂혀있구나. 아!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이 카페에 있네. 진짜 이 사람들하고 다 같이 만나서 술판을 벌리면 완전 새롭겠다.'
컥! 뭐지! 나란 인간!
정신을 차리고 '음주폐해'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맞아, 이런 게 알콜이지. 나는 지금 마지노선에 서 있는 거야. 여기서 턴을 해야 한다.
"너는 왜 술을 좋아하니?"
"맛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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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명백한 대답은 없다. 나는 주종에 상관없이 술이 맛있다.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고 첫 입부터 맛있어서 좋은 걸,,, 知之者不如好之者 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
좋아하고 즐기는 자를 어찌 금하게 할 것인가. 술을 처음 입에 댔던 고3 때부터 '이것은 신의 물방울인가'했던 나를 어찌할 것인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사람에게 내려주시며, 많이 마시면 사람이 즉각 개로 변하는 주문을 걸어 놓으신 걸까. 요즘 같은 첨단과학시대에 이렇게 버티다 보면 알콜의 유해성분을 완벽 해독하는 해독제가 곧 개발되지 않을까. ㅜㅜ
아냐,
그만 애걸복걸하고 이제 그냥 헤어지자. 알콜에 그 어떠한 가능성도 부여하지 말자.
술을 마시며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너무 좋다는 가능성,
주사가 심하지 않아 이 정도 컨트롤하면 되지 않냐는 가능성,
나는 술을 많이 마셔도 장기가 아주 깨끗해서 아직 버틸 수 있다는 가능성,
언젠가 하루아침에 끊는 날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가능성,
이런 '가능성'에도 중독이 되어 술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다.
다 버리고 1년의 데드라인을 주고 도전하자.
금주카페에 들어가 보면 '금주의 장점'을 엄청 논리적, 감성적, 현실적, 이상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어떤 이는 금주 1년으로 모을 수 있는 돈을 경우의 수를 따져 계산해 주고, 어떤 이는 의학정보를 대며 몸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꼬치꼬치 말해준다. 관계가 좋아지고 생활이 개선되며, 감정조절이 잘 돼 그냥 사는 게 스무스해진다는 설득의 설득, 다 맞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울리는 말은 이거였다.
중독, '너와 함께 티스토리'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나, 채울 수 없음 또한 알고 있다.
그렇다. 술은 맛만 있고 즐겁게만 해줬을 뿐 나의 생활도 건강도 행복도 만족도 미래도 채워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