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꽃지 Nov 29. 2022

나는 지금, 구간단속 구간에 있다.

막힌 중년



대전과 서울의 큰 차이 중에 하나가 집에서 나와 10분만 달려도 바로 고속도로라는 거다.

은근히 고속도로를 탈 일이 많고, 그 길이 거의 막히지 않는다는 건 정말 신기하다.

핸들을 잡고 '이제 가보자'하는 신체정신 팔팔한 시점에서 

곧바로 탁 트인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나의 숨겨진 본능이 깨어났다.


<레이싱 본능>


어물쩡거리는 것들은 빨리빨리 제치는 게 운전자의 도리랄까. 너의 길과 나의 길의 다름을 알려야 한다.

핸들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며 엑셀을 꽉 밟을 때 발가락 사이사이로 전해지는 '부왕~~ 왕~' 엔진의 진동!

앞서 기어가던 머저리(?)가 룸미러에서 멀어지는 걸 확인하며, 왼쪽으로 쓰윽 스무스하게 들어갈 때

1차선을 다시 정복한 나의 만족감은 하늘을 달린다.

1차선은 나의 길! 

'이 길에서 가장 빠른 건 바로 나야 나~~~' 


허나, 인생이 그렇듯 쾌감은 딱 거기까지다.

밟을려할때마다 어김없이 띠링띠링 울려대는 과속단속 내비게이션 소리에  

억지로 브레이크를 꾹꾹 몇 번 밟다 보면, 마치 저녁 6시 10분에 강남대로를 지나칠 때처럼

운전대에 확 싫증이 난다. 


'그래,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여기저기 지켜야 할거 천지인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건너라 말아라. 30, 50, 60, 100, 숫자를 맞춰야 하는....

아휴, 원래 운전이 사는 거만큼 지겨운 거였지', 


회피 반응이랄까.  

앞차, 뒤차와 속도를 맞춰 정속으로 얌전하게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스르륵 잠이 몰려온다.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별의별 짓을 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쳐내려 오는 눈꺼풀과 힘겹게 사투를 하고 있을 때쯤,


나를 진짜 열폭하게 하는 건. 

구간단속 구간






언젠가부터 속도내기 딱 좋은 길마다 구간단속이 시작됐다.

이건 진짜 내 스타일 아니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답답해서 뱅글뱅글 돌다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는 일이 다반사인 나인데,,,

차도 별로 없는 도로를 정속으로 계속 가라는 건

안전도 좋지만 운전대 잡고 있는 사람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속도도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지나친 구속'이다.

답답 답답 답답해.

.

.

.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

답답한 이 기분, 

요즘 느끼는 회의감... 불안감...

.

.

지금 내 삶이 바로 

구간단속이구나.

.

간단 

.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잘 굴러가는 거 같지만,

답답함이 차올라 나 스스로는 견디기 힘든 이 상태.

갈 길의 방향이 옳은 길이기에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는데,

삶의 속도를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를 미치게 하는 거였구나.


그래

난 지금, 구간단속 구간에 있다.


이 구간이 끝날 때까지 그냥 버텨야 

벗어나지는 걸까? 

권리와 자유는 보잘것없고 

의무와 책임으로 점철된 시기가 중년인가 보다.


남들은 편하게 달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답답한 건지, 나라는 외투가 무거운 오늘이다.


이전 09화 70대 부모님, 10대 아들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