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영유아 사교육 보고서
EBS 영유아 사교육 보고서
제목만으로도 안 보고 넘어갈 수 없는 다큐였다. '영유아 사교육'. 이 두 단어만으로도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 귀가 쫑긋해지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어제저녁 육퇴 후 꿀 같은 휴식을 포기하고 EBS 사이트 회원가입이라는 귀찮음마저 극복한 후 전체 다큐 영상을 다시 보기 했다. EBS에서 정리한 이번 다큐의 방송 목표는 이러하다.
조기 사교육이 영유아의 정서적 발달, 나아가 지능적 발달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과 성장, 부모의 바람직한 교육관은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영유아 연령별 뇌발달 과정과 적정 교육법에 대한 과학적 분석
영유아 사교육 관련 사례자 인터뷰 취재를 통한 심도 깊은 공감 제고
이번 다큐에서도 조기 사교육 그 배경의 중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나 '불안'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아이가 불과 5살 때 어떤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 시작된다. 미디어의 발달도 불을 지폈다. 각종 SNS를 통해 사교육과 관련된 정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그만큼 주변 엄마들과 미디어에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들 인터뷰 속마음 한 줄 한 줄이 참 주옥같으면서 과연 나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모든 부모들의 속마음을 관통하는 한 문장은 이거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말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섰으면 좋겠다.
영어유치원에서 그치지 않고, 원하는 영어유치원을 가기 위한 레벨테스트와 영어 과외까지. 그 배경에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은 앞섰으면 하는 마음, 나는 우리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워내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떨어진 유명 학원 레벨테스트에 우리 아이가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아이가 유명 학원 버스에서 내릴 때 하차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러나, 여러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 조기 사교육이 아동 학대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 경고한다. 시기 별 뇌 발달에 필요한 적정 자극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뇌는 7세 이후에나 학습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 이전 3-6세 유아기에는 사회, 정서 자극을 통해 일명 '정서 뇌'로 불리는 변연계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변연계가 발달되어야 하는 유아기에 무언가를 암기해야 하거나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필요한 세모 자극이 아닌 적절하지 않은 네모 자극이 반복적으로 아이의 뇌에 들어오게 되면, 변연계의 두 축인 '정서뇌를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성숙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결국 이후 전두엽의 발달에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뇌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공부 잘하는 뇌는 정서 뇌가 탄탄하지 않으면 절대 잘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조기 사교육의 효과는 그저 착시일 뿐이라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아프고, 고통받고 있다고.
영유아기에 적절하지 않은 인지 자극, 학습 자극 말고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으로 이번 다큐에서 강조한 것은 역시나 '놀이'였다. 그만큼 스스로 탐색하고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며,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힘을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고, 이를 통해 심리적, 정서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정서 뇌가 탄탄하게 발달한 아이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내적 동기가 충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출산 후 병원에서 진행했던 신생아 선천성 대사이상 선별검사에서 아이의 갑상선 수치가 2번이나 높게 나왔다. 당시 서울대 어린이병원으로 전원해 여러 차례 병원을 다녀왔었다. 병원을 다녀올 때면 그날 마주했던 수많은 아픈 아이들로 마음이 좋지 않았고, 돌이켜 보면 당시 내가 바랐던 건 딱 한 가지였다.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그런데, 나를 포함한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과거의 내가 바랐던 그 1가지를 잊어버린 채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조기 사교육을 선택하는 부모들도 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 아이는 아직 만 2살밖에 되지 않았고 영어유치원을 보낼 생각이 지금으로선 없다. 그래서 영유아 사교육을 마주하게 될 순간이 아직은 다소 먼 미래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 관련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글도 쓰며 나 자신을 다잡는 중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스스로 다짐한 1가지가 있다면,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아이에게 나의 인생을 살게끔 바라지 말자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스스로가 부족했던 점을 떠올리며 아이를 통해 부족했던 부분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이 된다.
1년 육아휴직을 통해 느낀 바가 있다면, 나는 육아를 잘한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 한번 더 다짐했던 것 같다. 아이와 나의 인생을 분리해서 살아야겠다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자고.
나의 시간을 온전히 육아에 바쳤을 때, 나는 오후 4시만 넘으면 남편이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 모든 시간과 일상에 심리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아이를 중심으로 내 모든 일상이 5년, 10년 흘러간다면 나는 내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구분할 수 있을까?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결국 내 인생에 대한 성적표 같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이번 EBS 다큐는 다음 질문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난다.
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나는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특정 직업을 가지길 바라기보다 아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들을 내가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 아이가 살아갈 시대는 더 이상 주어진 공부만 잘해서는, 하라고 하는 일만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가 내적 동기를 바탕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에 빠질 수 있어야 AI와 함께 하는 인간으로 미래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힘들 때 아무 일도 아니라며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아이와 소소한 일상과 추억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언제나 솔직하게 대화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그런 엄마 아빠가 될 수 있게 노력해 보자고 스스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이번 다큐와 함께 EBS 놀이의 힘 책도 함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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