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전(前), 별 후(後)
기원전(B.C), 기원후(A.D)처럼 시간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내 인생의 기준은 별 전(前), 별 후(後)로 나뉘지 않을까?
별이를 키우기 전엔 그냥 강아지는 귀여운 존재였다. '인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더 맞을까? 꼬리 치며 오는 그 모양새가 귀여웠고, 말하는 대로 손도 주고 엎드리는 신기한... 그저 소유하고 싶은 인형.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인가 싶다. 아마도 그걸 몰랐으니 그리 쉽게도 '키우자'라는 말을 뱉을 수 있었겠지.
준비되지 않은 채 어린 별이를 만나 같이 생활하면서 맞닥뜨린 수많은 편견과 시행착오들. '대소변을 왜 못 가리나, 산책은 왜 중요해, 왜 물건을 물어뜯지, 왜 자꾸 짓어' 등등 "왜?"라는 물음의 연속. 이해할 수 없는 별이의 행동에 지치기도 여러 번이었고 훈련이랍시고 '앉아, 엎드려'를 다그치며 별이를 몰아붙이기도 일수였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별이를 만나면 어땠을까? 오랜 시간 별이와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그 물음의 해답이 이제야 찾은 듯하다.
그간 별이는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싫어, 너무 무서워, 같이 놀자, 이러면 내가 불편해' 라며 몸부림쳤던 시그널들이 사람의 눈에는 사고뭉치처럼 보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답을 하나하나 풀다 보면 어느새 별이는 이미 '개'라는 명칭을 가진 동물이 아니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같은 생명체로써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알고 나서부터 왜 사람들이 반려견을 "가족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전에는 '나'라는 인간이 기준이 되어 세상을 좁은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더 넓어진 시선으로 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과 그들의 삶에 마음이 가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시선의 변화는 별이가 가르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하늘에서 '나'라는 인간밖에 모르는 사람을 고쳐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려고 반려견을 내려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