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글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
전쟁 속에 홀로 남겨진 한 소년, 그리고 자유를 향해 걸어간 한 아버지의 삶.
딸이 남긴 글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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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국화 향으로 가득했다. 무겁게 드리운 공기 속에 찬송가 선율이 낮게 흘렀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은 모두 강단에 서 있는 한 사람에게 모여 있었다. 고인의 딸이었다. 그녀는 손에 쥔 종이를 조심스레 펼쳤다. 글의 제목은 「소년과 산」. 순간, 추모의 자리는 하나의 서사로 바뀌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았지만 떨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떨림 속에서 한 인간의 생애가, 한 아버지의 길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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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소년이었다. 전쟁은 너무도 일찍 그를 세상 한가운데 던져놓았다.
경보가 울렸다. 처음엔 미약했지만 곧 집요해졌다. 작은 속삭임이 골목마다 외침으로 번졌고,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긴박함이 마을을 휘감았다. 이웃들은 허둥지둥 짐을 꾸리고, 아기를 안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챙겼다. 북한군이 오고 있었다. 수천의 가족이 남쪽으로 밀려가는 인파에 합류했다.
어머니는 아기를 등에 업고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는 몸을 기울여 짐수레를 밀었다. 담요, 솥, 쌀자루, 그리고 아직 형체조차 갖추지 못한 미래의 무게가 그 위에 실려 있었다. 소년도 아버지를 도와 수레를 붙잡았다. 거센 먼지와 땀으로 손은 금세 조여왔다.
하지만 소년은 늘 호기심 많고 독립적이었다. 잔해 속의 반짝임, 낯선 소리 하나에도 눈길을 멈추었다. 돌아섰을 때, 가족은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얼굴을 찾고,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먼지 속에서 그는 울지 못한 채,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의 엔진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소년은 군중 속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었다.
혼자가 된 그는 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탱크는 거북처럼 기어 다니고, 사람들은 개미처럼 흩어졌다. 굉음과 섬광, 연기와 불꽃. 그 모든 것을 소년은 이상한 공연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갈라졌다. 은빛 비행기가 계곡 위로 낮게 날았다. 잠깐 동안 조종사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손을 들어 경례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두 팔을 흔들며 웃었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느낀 자유였고,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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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미술대학에 들어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했고, 번뜩임과 우울이 교차하는 청춘의 불꽃 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젊은이들의 삶을 휩쓴 비트 세대의 물결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는 그 흐름에 몸을 던졌고, 캔버스 위에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결국 소르본의 벽에 걸렸다.
예술은 그에게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쟁의 소년이었던 그는, 이제 세계와 대화하는 청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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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그의 삶에 들어와 불꽃이 되었고, 때로는 부딪히며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두 딸을 낳아 함께 길을 걸었다. 딸의 글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조금은 투박한 사람이었다.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다. 새로운 모험이었다. 아버지는 차를 좋아했다. 얼룩덜룩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차를 몰고 학교 앞에 나타날 때면, 어린 딸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가 차를 사랑한 이유는 소년 시절로부터 이어져 있었다.
“왜 차를 좋아하냐고? 오래전 어느 계곡, 낮게 날던 비행기를 떠올라서지. 그때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단다.”
그의 삶은 언제나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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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의 호숫가에서 그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수도승처럼 헌신적으로, 도박꾼처럼 집요하게.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독 속의 명상, 자유 속의 예배였다. 낚시줄 위로 반짝이는 햇빛과 호수의 물결은 그에게 또 하나의 산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러나 그의 만남은 순종이 아닌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질문했고, 논쟁했고, 굽히지 않았다.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한 그는 무릎 꿇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믿음은 억지로 길들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조용히 붙잡아, 천천히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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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글의 마지막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다.
“우리 용감한 아버지.”
그 순간,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각자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소년, 불꽃을 태운 청년, 가족을 이끌어간 아버지, 신앙 속에서 자유를 찾은 한 인간.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 글을 들으며 생각했다. 인생은 결국 하나의 산맥이다. 소년의 산, 청년의 산, 아버지의 산, 믿음의 산. 고개를 넘고 계곡을 지나며 이어진 능선이, 한 사람의 서사를 만들고, 남겨진 이들에게 길이 된다.
장례식장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그 산 위로, 그가 바라보던 은빛 비행기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마음속으로 따라 중얼거렸다.
“용감한 아버지, 잘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