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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별 우주에서 통신하는 법

by 몇몇

모든 만남의 순간은 새로운 통신의 시작이다. 그 누가 됐건 같은 채널에 같은 주파수로 소통하는 이들은 일관된 목소리를 낼지언정 상대와 소통할 수 없다.


주파수를 맞추지 않은 채 하는 대화는 때론 소음이 된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 이야기를 외치는 켜져 있는 두 개의 영화가 된다.


동시에 함께 채널을 바꾸어 간다면 쉽게 통신이 이뤄질지 모르나, 한쪽이라도 상대에게 주파수를 맞추면 통신이 시작된다.


비록 때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채널이라 하더라도 곰곰이 곱씹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나랑 잘 맞지 않는 극과 극의 주파수와 소통할 때 우린 가장 먼 나라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주파수가 슬픔에 맞춰져 있을 때 상대는 함께 슬픔을 끄집어내어 다룰 수 있다. 상대를 슬픔으로 물들이자니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그 일은 상대 내면의 슬픔을 마주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힘듦에는 힘듦이, 기쁨과 성취에는 뿌듯함이, 불쾌함에는 언짢음이, 유쾌함에는 즐거움을 주고받으며 우린 하나의 채널에 머문다.


그 머무름이 유지될 때 우린 외로움에서 벗어난다.

외롭고 고독한 마음의 우주에서 나 혼자가 아니었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외롭지 않고자 내 주파수만을 상대에게 맞춘다면 내 마음의 통로를 열 수 없다.


상대에게도 내 마음에 맞춰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들도 나의 마음을 느끼고 그 채널을 찾아 내 외로움을 안아볼 자격이 있다.


때론 주파수에도 혼돈이 찾아온다. 슬픔을 숨긴 즐거움은, 즐거움을 숨긴 힘듦은, 질투를 숨긴 축하는 어딘가 온전하지 않을 때가 있어 우린 외로움을 잃을 듯 잃을 수 없다.


그럴 때면 잠시 통신을 멈추고 내 마음 깊은 곳의 진동을 느껴보아야 한다.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내 마음의 속삭임을 귀 기울여 듣자.


아, 나 그런 마음이구나.


깨달은 후에야 다시 원활히 통신할 수 있다.


때때로 주파수 맞추기에 지치는 날도 온다. 어떤 사람들은 쩌렁쩌렁 자신의 마음만을 방송하여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날도 온다.


그러나 나만이, 나라는 진정한 애청자만이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다시금 조용히 내 마음의 무전을 켤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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