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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나

감정응급키트

by 몇몇

스트레스가 올라올 때 몇 가지 응급키트를 만들어 두면 좋다. 사람마다 스트레스, 불편한 마음을 다루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좋은 방법의 큰 틀은 비슷하리라. 모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비슷하다 말한 문장처럼.


우선 스트레스의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힘든 나를 보듬는다. 그 문장은 제각각이 될 것이다. 아이처럼 어르는 말일 수록 좋다. 얼마나 힘들면. 고생 많았지. 우쭈쭈의 결을 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 달램에 내 몸과 마음은 조금 녹진해지리라. 자연스레 그 토닥임은 이완을 불러일으켜 한층 상황에서 나를 분리한다. 이러한 인식 없이 바삐 스트레스 숲을 헤쳐나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바쁜데 나를 돌보고 있을 틈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오히려 지름길을 찾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나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조금의 이완, 조금의 가라앉음을 경험하고 나면 찬찬히 스트레스를 들여다보자.


어떤 점이 나에게 지금 마음을 불러일으켰는가. 그리고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나의 지금을 좋은 예시로 활용하자면, 여기까지 글을 쓰며 나는 조금 이완되었고 이제 나를 찬찬히 살피고자 한다. 나에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그러려면 지금 어떤 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잘하고' 싶은 영역은 일 적인 것, 친구와 가족에 관한 것, 그리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으로 다양하다.


잘하고 싶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데, 잘 안될까 봐 불안하고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 압박감이 든다.


나의 상황을 문장으로 적고 나면 그 깊은 스트레스 숲에서 조금은 빠져나오게 된다. 사람들은 되려 그 스트레스를 인식하고 싶지 않아서 곁다리의 주변부의 혹은 관계없는 일들에 접근하곤 한다. 시험기간에 청소하고, 과제가 있을 때 정리정돈을 하는 흔한 예가 있다.


나 역시 쓸데없는 정보를 눌러보며, 카톡방을 둘러보며, 내 위로 차고 오르는 불안을 밖에서 안으로 누르고 또 누르려고 한다.


그러나 어찌 마음이 눌러지겠는가. 한번 눌린 마음은 더 크기를 부풀려 올라온다. 꾸역꾸역 몸 밖으로 흘러나온다.


오히려 힘들수록, 괴로울수록 시간을 써서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의 경우 글쓰기가 매우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꼭 적거나 말하지 않아도 가만히 내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모른 척, 다른 것을 하며 바둥대지는 말자. 그건 마음이 토라지도록 하는 빠른 길이니.


여기까지 왔다면, 내 상황과 마음을 잘 파악했다면, 나를 살살 달래며 행동하자.


지금 내 불안을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행동으로 옮기고, 어쩔 수 없는 불안이라면 토닥이며 나의 다음 결정들에 영향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안은 준비하는 에너지로 쓸 수 있고, 그걸 넘어서는 불안은 다음에 함께하기로 어르고 달래자.


산책하기, 심호흡하기, 글쓰기, 달달한 것 먹기, 커피 한잔 마시기, 눈을 감고 명상하기, 노래 듣기, 책 읽기, 내가 썼던 글 읽기... 작은 단위의 사소한 키트들을 많이 채울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감정 응급 키트는 사람마다 다르니 차근히 알아보아야 한다. 잘 만들어 둔 응급키트도 막상 사용하려 하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막상 그 순간에 사용할 수 없거나, 해도 소용없거나.


시행착오를 거쳐서, 몇 번의 재구성을 거쳐서 나만의 응급키트를 점검해 나가 보자. 어떤 날에도 어떤 스트레스 앞에서도 마음 편히 꺼내들 수 있는 내 꾸러미를 준비한다는 것. 그 준비하는 시간조차 나를 돌보는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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