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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고 쪼개기

by 몇몇

모든 게 엉키고 설켜서 한 덩어리로 보이는 때가 있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한 데 뭉쳐서 떨어트려 놓을 수 없는 사실로 눈앞에 존재하는 순간.


그 순간에 우린 절망적이며 압도당한다.

그 거대하고 커다란 덩어리에 짓눌린 기분을 느낀다. 어떻게 해도 마주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저 아래에 깔려서 버둥거리거나 벼랑 끝으로 밀려 날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다시금 덩어리에 달라붙어 몸집을 불린다. 우리의 두려움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브레멘음악대의 그림자처럼, 불빛을 비추고 샅샅이 들여다보면 조각난 하나하나의 틈새가 보인다. 사실 하나는 당나귀였고, 하나는 거북이였고, 한 조각은 원숭이 일 수 있다.


우리 눈앞의 일에 압도되어 실눈을 뜨면 그 덩어리는 더더욱 우리를 짓누르고 위협한다.


우린 그 커다란 덩어리를 작게 쪼개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틈새를 벌리는 법을 알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떼어 놓는 것이다. 이건 가장 급한 일이고, 이건 사실 별거 아닌 거고, 모여 있으니까 엄청나게 느껴지지만 차근차근 시작해서 해치우다 보면 하나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무언가가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릴 멈추게 한 것은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린 '학교 가기 싫다', '일하기 싫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커다랗게 뭉친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우린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힘들어 하지만 쉬는 시간엔 즐거워한다. 학교 가는 길은 피곤하지만 그 길에 만난 친구들은 반갑다.


일하기 싫지만, 어떤 일이 잘 되어갈 때 우린 뿌듯하다. 일이 힘든 날도 많지만 그렇기에 잠깐 마시는 커피 한잔은 일하는 날 더 달콤하다.


난 저 사람을 싫어해. 에서

저 사람의 이런 부분이 싫어.로

저 사람의 이런 부분은 가끔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해.로


쪼개자. 쪼개자. 잘게 잘게 쪼개자.


그러다 보면 우리 앞의 거대한 덩어리는 어느새 부서져 부드러운 모래알이 되어있다.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간지러움을 선물한다.


모래가 무엇이든 될 수 있듯이. 우린 무엇이든 모래로 만들 수 있다.


당신 눈앞의 일이 버겁다면.

쪼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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