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만히 바라보기

by 몇몇

바쁜 삶 속, 우린 늘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잠시 나는 틈새 시간조차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언제나 목표를 세우고, 언제나 방향을 찾고, 다음을 향해 그다음 미래를 향해 시선을 두고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보면 눈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 큰 불안에 휩싸인다. 늘 걷고 뛰고 달리던 에너지는 갈 길을 잃는다.


때론 쉬는 것조차 편치 않다. 쉬는 날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을 떠올리거나, 아무렇게 흘러가는 미디어에 주의를 주다 하루가 끝난다. 눈앞에 무언가가 없으면, 해야 할 무엇이 없으면 동동 거리게 된다. 할 일을 찾게 된다.


집중할 곳이 없고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를 사람들은 허무하게 여기며 허무하게 보내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마주해야 한다. 실은 그 시간만이 우리 내면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겪은, 내가 경험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분주히 내면에서 돌아다닐 때, 우린 홀로 고독하게 심심한 시간을 통해 그 모든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목적 없이 목표 없이 걷는 산책만이 우릴 환기시켜 주듯,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감정과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렵다. 뭔가를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건 영화 관람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안아주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떠오르는 내 상념들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때 역시도, 마주 본 채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 목적 없는 쉼 속에, 의도하지 않는 고요함 속에, 그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바라보며 숨 쉴 필요가 있다. 숨 쉬어야 한다.


숨 쉴 필요, 숨 쉬어야 한다. 그 보다 더 근원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해야 한다, 는 말 대신에 그냥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식의 날을, 안식의 시간을 겪고자 존재한다.


해야 할 일로 가득 싸여 분주한 사람들이여. 그 모든 순간이 애씀이라는 걸 알아주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편안히 맞이하기를.


무위의 상태에 조급해하지 않기를. 그 상태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오늘,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자. 10초도 좋고, 1분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생각과 느낌도 그냥 둔 채로.


혹은 내 곁의 식물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동물을, 가만히 바라보자.


그 존재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는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지는가.


우리는 사실 그러려고 사는 아닐까.



[한병철, '관조하는 삶'을 읽고]


keyword
이전 12화기대와 실망의 소용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