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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패턴

by 몇몇

우린 패턴을 애용한다. 한 번 두 번 같은 흐름으로 흘러간 상황을 묶어서 꾸러미로 만든다. 반복되면 될수록 더 강하게 묶어 풀기 어렵도록 밀봉한다.


이제 같은 사람과 비슷한 상황이 시작되면, 우린 더 볼 것도 없이 결론을 내린다. 뇌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많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결론 내리기. 그래서 우린 비슷한 신호를 주는 사람을 쉽게 피하기도 하고, 첫인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의 센서가 정말 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꾸러미를 통한 속단은 우릴 둥둥 떠오르게 한다. 겉돌게 한다. 포장된 그 상자는 사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무엇이 담겨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풀지 않고 상자 째로 다루면 우린 그 보석을 발견할 수 없다.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상황, 감정, 질문, 반응 그 모든 것들이 상자를 마련하게 하며, 통째로 묶도록 한다. 괜히 풀었다가 그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 조심조심 파손주의 스티커까지 붙여가며 다룬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에게 편견이 있고.

비슷한 사람을 비슷하게 대하고.

새로 만나는 사람도 비슷한 대화방식을 보인다면 빠르게 판단한다.

피하거나 가까워지거나.


그 방식이 나쁘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린 상처받았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자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다. 나를 보호하려는 방법을 누가 나쁘다 하겠는가.


다만 그 상자 안에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같은 사람과 같은 싸움 같은 패턴을 겪다가 우린 지쳐서 갈라서기도 하고, 같은 갈등이 싫어서 피하기도 한다.


우릴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고, 평화로울 어떤 날엔 그 위험을 들춰 볼 용기를 내자.


소중한 누군가와 늘 같은 일로 다투는가? 늘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가. 지쳐가는가.


그렇다면 내 상자를 열어볼 차례다. 상자에 꼭꼭 넣어두고, 언제나 그렇지. 넌 항상 그래. 우린 늘 이렇다니까. 그렇게 요약하기를 멈추고 아프지만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에게 눌리는 버튼은 어디인가. 그에게 눌리는 버튼은 또 어디인가. 그 지점을 잘 펼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패턴을 패턴으로만 보면 우린 그 한가닥 한가닥을 다룰 수 없다.


오늘도 비슷한 패턴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상자를 열고 실의 끝을 찾아야 한다.


우린 익숙한 그림을 다르게 보기 어려워하는 뇌를 지녔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제나, 늘, 항상, 뻔한'일들 앞에 새로운 돋보기를 들고 앉자.


오늘, 새로워질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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