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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기록

by 몇몇

무엇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 날이 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어떤 급한 일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눈길이 가는 대로 책을 읽어내려간다.


불편함, 부족함, 불안함. 모든 당연한 감각들이 찾아오지 않고 평온하게 머무는 날. 모두에게 그런 순간은 아마도 찾아올 것이다.


다만 우린 그 순간에 기록하지 않는다. 그 평온하고 아늑한 순간을 흘려보내는 데에 익숙하다. 어디로부터도 건드려지지 않는, 안정되면서도 평화로운 순간을 우리는 기록하지 않아 곧장 잊는다.


상대적으로 괴롭고 불쾌한 경험은 우릴 오랫동안 못살게 군다.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자꾸 떠오르며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역설적으로도 뇌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리한다.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낱낱이 그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불쾌함을 야기한 원인, 그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탓할 수 있는 것, 내가 모를 제3의 이유, 모든 것을 찾기 위해 뇌 전체를 압수수색 중인 탓이다.


그러니 내가 불쾌감에 머물 땐, 나를 토닥이자. 애쓰는 나에게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하자.


불쾌가 머리를 장악한 순간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줄 열쇠는 내 아늑한 날들에 있다.


평온하고 차분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날에 기록하자. 꼭 기록이 아니어도 되나, 기억하자. 기억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이다.


평온한 순간에 나는 어떤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 순간이 뇌 속에 깊이 기록되도록 그 순간의 만족감을 만끽하자. 표현하자. 적자.


우리에겐 모두 기쁜 순간이 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있다. 뇌가 바쁘게 부정적인 경험을 오래 기억해서 해결하려 할 때, 우린 우릴 안아주고 토닥이며 그 기억을 꺼내 읽어야 한다.


괜찮아. 곧 다시 모든 게 해결되고 평온한 시간이 찾아올 거야. 그 시간을 네가 찾을 거야.


오늘 당신은 평화로운가? 그 아늑함을 기록하자. 혼란스러운 어느 날 꺼내먹을 작은 쿠키를 재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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