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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Jul 02. 2022

코로나 시국에 비행 중입니다 1

내가 도하에서 지상직으로 일하던 2015년 즈음, 한창 메르스가 전염병으로 돌기 시작했고, 특히나 그 중심인 중동에 있던 지상직 직원들은 혹시나 메르스에 걸릴까 전전긍긍하면서 일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공항에서 일하는 탓에, 혹시나 나도 메르스에 감염될까 매일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런 사태는 이번뿐일 거라고, 이게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2020년 초반,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여러 업계와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와 경기 침체로 인해 고생을 했지만,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입었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 기내 청소팀, 기내식을 배달해 주는 팀, 비행기 안전점검을 하는 엔지니어들, 예약 발권 및 체크인, 환승, 보딩 등 다양한 일을 주관하는 공항 지상직 직원들, 손님의 짐들과 화물을 체크하는 팀 등... 각 부서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정말 많은 팀들이 있고, 그 뒤에는 이 인력들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이들이 운반하는 물건들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승객 한 명이 티켓을 예약하고, 여행을 시작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노고가 들어가지만, 이를 거꾸로 말하면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다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정 마음으로 깨닫게 된 것은 코로나로 인한 인원 감축과 비행이 사라진 로스터를 보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매해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고, 거의 매달 새 취항지를 오픈하고, 엄청난 수의 크루들을 채용해오던 우리 항공사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계획 중이었던 새로운 취항지들과 크루 채용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고, 있던 인원들마저 감축하는 상황에 들어갔다.


나는 운이 좋게 정리해고를 피해 갔지만, 대신 지상직 친구들과 크루 친구들 몇 명을 떠나보내야 했고, 오프 날 한국에 놀러 갔다가 갇혀서 돌아오지 못한 채로 1년 3개월을 보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카타르에서 한국발 승객의 카타르 입국을 제한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들려오는 정리해고 소식과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도하에 있었던 크루들이 나보다 더 고생을 했더라.


여느 나라들처럼 시행된 외출 관련 제한 정책들과 손에 꼽을 만큼 적어진 비행 횟수,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절망감은 물론이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들려오는 정리해고 소식들과 그나마 몇 번 없는 비행에서 혹시나 코로나 걸린 손님이나 크루가 있을까 매번 걱정을 하며 비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 다녀와서 코로나 환자 접촉 사례로 격리되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사실 이건 나도 비행하면서 한번 겪었다.)




1년 3개월이 지나 도하로 돌아온 나는 다시 비행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극성이었다. 

회사에서는 방역복을 나누어주었고, 사태가 심각할 때는 고글도 나누어주었다.

크루들은 회사 유니폼 위에 방역복을 입고, 얼굴에는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하고, 손에는 장갑을 낀 채로 기내 서비스를 하였다. 방역복 때문에 땀은 엄청나고, 몸에서 나는 열기는 고글과 마스크 사이로 빠져나가지 못해 고글 안이 습기로 인해 뿌옇게 되는 일은 다반사였다. 계속된 장갑 착용으로 손등에는 알레르기 반응으로 벌겋게 염증이 났고, 마스크와 고글로 인한 머리 눌림과 산소 부족으로 두통을 달고 살았다.


레이오버 비행이라도 가면 크루들은 비행 간 도시에서 격리 조치되었었고, 어떤 경우는 복도에 사람을 두고 크루들이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끌고 다니는 짐을 한데 모아 소독 스프레이를 엄청 뿌리면서 철저히 방역하는 국가도 있었고, 일일이 백신 접종 카드를 확인하여 일정 기간이 지났으면 받아주지 않는 국가도 있었다. 


비행 전 모든 크루에게 PCR 검사를 요구해서 도하에서 검사 후 음성 확인서를 들고 비행하는 경우도 꽤 있었고, 간호팀의 열 체크 후 체온 확인서를 가지고 비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다들 방역에 예민하던 때였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니 내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커다란 코로나바이러스가 된 기분이었다.




비행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고, 그 와중에 코로나에 걸린 손님이나 크루와 같은 비행기에 있게 되면 비행 후 격리조치를 당했다. 그래도 우리는 비행을 멈추지 않았고, 이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믿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 또한 다시 도하로 돌아올 수 있었음에, 내가 좋아하는 내 일을 지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그렇게 버텼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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