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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Jul 16. 2022

승무원의 시차 적응법

모든 직업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 아닐까 싶다.


지상직 때도 야간근무나 저녁 근무 로스터가 있었지만, 그래도 약 몇 달간은 고정된 로스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괜찮아졌었는데, 승무원의 로스터는 어제는 밤 비행, 내일은 아침 비행, 다음엔 오후 비행시간이 마구 뒤섞이기 때문에, 매우 불규칙한 생활패턴을 가지게 된다.


특히 레이오버 비행의 경우, 도착한 나라와의 시차로 인해 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승무원들이 시차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남들보다는 시차를 좀 덜 겪는 편이지만 그래도 불면증을 아예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차 극복을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찾아보다가,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오늘은 몇 가지 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잠을 잘 때는 시간을 계산해서 잔다. 특히 레이오버의 경우, 도착 후에는 반드시 다음날 픽업 시간을 확인한 후 수면시간을 계산한다. 호텔 도착 후 다음날 픽업까지 남은 시간이 20시간 이상이면 2-3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에 나중에 다시 긴 잠을 청하고, 20시간 미만이면 안 자고 버티다가 한 번에 몰아서 잔다.


레이오버가 짧은데 피곤하다고 바로 잠을 청했다가는 중간에 잠을 깨고 비행 전까지 잠들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시간을 계산해서 잔다. 단,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일어날 것. 꾸물대지 않고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잠을 청할 때는 모든 빛을 차단한다. 직업의 특성상 밤에 자야 할 때도 있고, 낮에 자야 할 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잠잘 때 빛이 있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빛을 차단한 후 완전히 깜깜한 상태로 잠을 청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지 비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수면은 나에게 최우선 순위이고, 밖에 해가 뜨건 달이 뜨건 내가 자야 할 시간에는 꼭 취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암막 커튼으로 빛 차단에 매우 신경을 쓰는 편이다.


참고로 모든 승무원의 숙소에는 암막 커튼이 설치되어 있고, 밤 비행이 연달아 있을 때는 암막 커튼을 쳐놓은 상태로 지내지만, 오프가 있을 때는 커튼을 열고 환한 햇살을 즐기며,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을 보며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사치를 부려보기도 한다.


셋째, 수면 전에는 음식을 조절한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먹고 바로 취침을 하면 배탈이 나거나 소화불량으로 중간에 깬다. 고로 랜딩 시간과 랜딩 후의 일과에 따라서 식사를 조절한다. 도하에 밤에 도착하는 경우에는 비행기 내에서 식사를 끝내고 집에 와서는 샤워를 한 후 바로 잔다. 약간 출출하더라도 취침 전에 금식을 해야 밤에 잘 자고 다음날 몸이 개운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먹지 않는다. 레이오버나 도하에서의 깨어있는 시간이 긴 경우에는 약간 출출한 상태로 랜딩을 해서 도착 후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넷째, 오프를 적극 활용한다. 쉬는 날에는 몸 회복을 우선순위로 둔다. 밀린 운동도 하고, 야채랑 과일도 잘 챙겨 먹고, 알람 없이 푹 자기도 하며, 무엇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주로 나의 취침시간은 저녁 9시를 넘지 않고 (8-9시면 잔다.) 아침에는 6-7시면 일어난다. 할 일이 있으면 새벽에 4-5시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아침의 고요함과 어스름한 새벽을 매우 좋아한다. 할 일을 하다가 창문 사이로 일출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다섯째, 평소 건강에 신경 쓴다. 영양제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이게 제일 어렵다...), 음식을 골고루 잘 챙겨 먹으려 신경 쓴다. 개인적으로 배달음식을 선호하지 않아서 도하에 있을 때는 주로 요리를 하는데, 주문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레이오버 때 먹는다. 도하에서의 오프는 마음과 몸을 충전시키는 데에 중점을 둔다.




나는 직업상 시차를 너무 많이 변동해서 살고, 어제는 아프리카, 오늘은 유럽, 내일은 미국...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뒤섞인 시간과 장소 속에 살고 있다.


비행 고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드는 3가지 생각은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내 픽업 시간은 언제이지?' '나는 지금 어느 나라에 있지?' 일 정도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가족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랜딩 후 한국의 시간을 확인했을 때 한밤중이면 전화할 수 없고, 친구들의 안부 카톡에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답장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생일을 늦게 챙기기도 하지만 (이게 날짜 계산 때문에 정말 애매할 때가 있다.) 그래도 가족 단톡방에 비행 출발과 도착 톡은 꼭 남겨놓고, 안부 카톡은 늦게라도 꼭 답장을 하며, 생일 축하는 미리 하는 대안으로 지내는 중이다.


시차라는 것은 내 직업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사항이자 내가 컨트롤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시차로 인해 하루를 잃기도 혹은 하루를 두 번 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하니,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즐겨보려 한다. 시차 고생 없이 푹 잘 수 있는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말이다.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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