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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Sep 01. 2022

병든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에필로그

우울증이 나에게 찾아온 지. 정확히 말하자면 병원에 가 진찰을 받은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처음에 한 알로 시작했던 약물이 어느새 손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아졌다. 우울, 불안, 강박, 알코올 의존 그런 것들과 나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를 병들게 만든 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나는 나를 배제한 채 살았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가치가 아닌 누군가의 가치였다. 난 나의 병을 들여다보며 내가 곪아가기 시작한 그 시점을 찾았다. 나를 잃었던 그 시점을.


병든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불완전한 마음에 들어차는 감정들을 아주 세세히 느끼며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벌거벗은 몸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듯 수치스럽고 아주 예민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그저 자신이 한심했고, 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선 나약함에 치를 떨었고, 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선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아졌다 말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넌 쓸모 있는 어른이니?’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현재 ‘병에서 치료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난 여전히 병든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여전히 쓸모 있는 어른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는다. 그 안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나의 언어들을 알아보는 누군가를 위해. 여전히 불안하고 강박에 시달리며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나는 누군가들에게 글로써 소리친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써야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생각했다. 내가 가장 위로가 되는 순간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알았던 때이고,  사람이 결국은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나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라는 .  병든 마음도 결국 인생의  부분이고, 나는  것에서 벗어나던지 혹은 평생을 끌어안고 오랜 친구처럼 함께하던지 어쨌든 인생의 일정 부분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나는 초연해졌다. 그래서 적고 싶었다. 초연해진 나는 모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부딪히며 언제나 그렇듯 무너지고 쓰러지지만, 그럼에도 또다시 일어나 나아간다.


자기 합리화, 자기 연민 그런 것들에 비롯된다 한들 지옥같이 느껴졌던 마음에서 조금 떨어져서. 그래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감정들이야. 이 것은 한때야. 그렇게 모순적인 생각들에 마음을 덜어내면서. 결국에는 현재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고통들과 맞서 싸우며 결국 나의 삶을 사랑하노라 외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나는 적어 나감으로써 안전한 범위 안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무너졌을 때, 나아지고자 적어나갔을 때, 조금은 숨통이 트였을 때를 나눠 적었다. 난 아직도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내 기분이 왜 이렇게나 바닥을 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여전히 삶은 힘들고 세상에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 없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지치지만 한편으로 외롭다.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하루들이 지루하고 의미 없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알아차렸다. 아주 많이 언급했던 그 ‘찰나’들은 나의 삶을 만든다. 인생을 나열했을 때 찰나일 고통, 우울, 슬픔, 행복들은 저마다의 무리를 꾸려 나의 삶을 완성시킨다. 그러니까 나는 이 감정들과 절대 헤어질 수 없다. 이 사실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평생을 함께할 나의 무엇들아. 우리 함께 잘 살아보자. 그렇게 그렇게. 언젠가는 난 불행하고도 행복한 나의 삶을 사랑해!라고 소리칠 수 있겠지.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나의 방황하는 마음을 적었다. 사람에 의지하기도 했고, 동물에 의지하기도 했고, 한 때는 하나의 시에, 한 때는 하나의 문장에 의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너지고 또 무너져 발밑으로 가라앉는 나를 처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말마따나 난 나를 죽이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벼랑 위에 날 세우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적어나간 그 글들에 내 처연함을 읽었는지. 읽히지 않았다면 좋겠다. 그 글을 쓰고 난 후 나는 정말 살고 싶었으니까. 살고자 적어갔으니까. 나와 같은 나약한 자도 결국엔 살아남았다. 나를 몇 번이고 벼랑 끝에서 떨어뜨렸던 우울함과 대적했다.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중독과 강박과 불안에 맞섰다. 그러니 누구도 해낼 수 있다. 누구도 살아갈 수 있다. 병든 마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따스함 유토피아 한 줌을 쥘 수 있길, 당신이 버틴 오늘 하루의 5분만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길, 결국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았으면, 그래서 나의 삶은 고통스러우나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우리는 그 마음을 나눠가졌으니, 어려운 길의 초입에서 한 발 더 떼어 나아갈 수 있겠지. 모두에게 나의 용기 그리고 응원을 나누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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