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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Jul 07. 2022

당신의 유토피아가 궁금합니다.

| 살기 위해 적는 문장들

한적한 저녁의 지하철이었다. 지하를 나와 지상을 달리는 지하철의 차창으로 서울의 야경이 비추었다. 평화롭다고 느꼈던 찰나, 어디선가 발을 쿵쿵 구르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지하철을 돌아다니다 구석 어딘가에선 발을 쿵 하고 내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떤 남자는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간간히 욕설을 하고, 대놓고 째려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두려움을 안고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생각했다. 어딘지 모르지만 불편하게 태어난 저 사람이 홀로 지하철을 타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을까. 배우 오윤아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인터뷰를 하며 그 아이가 홀로 서기 위해 부단히 해온 노력을 알아달라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윤아 배우의 말처럼 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꽉 닫힌 지하철의 답답함을 견디며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잊지 않게 되었을까. 저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홀로 지하철을 탔을 때의 두려움, 결국엔 이겨내고 원하는 목적지에 내렸을 때의 성취감 같은 것들을 떠올리다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모두의 시선이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저 사람의 행동이 특이하지 않은 일상이 되길 바랐다.


나는 너에게 물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넌 그 사람에게 가있던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순간 두려웠다. 네가 불편한 마음을 비출까 봐. 그런데 넌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 기특하다는 생각.
고생 많았겠다는 생각.”



책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 결함이 말끔히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라는. 


나는 그 순간 그 문구들을 떠올렸다. 적어도 너와 나의 세상은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고 느꼈다.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유토피아는 ‘가상의 이상국’이다. 가상이라면… 개개인의 유토피아는 다를 수도 있겠다. 어떤 이의 다정한 마음은 다정한 세상을 유토피아로, 어떤 이의 곧은 마음은 도덕적인 세상을 유토피아로 정의할 것이다.


나는 삭막하고 어렵게만 다가오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싶었다. 아주 멀리 달아나서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에 있고 싶었다. 동시에 아주 많은 사람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모순에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나만의 ‘가상의 이상국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아주 멀리 달아나도, 그가 다시 돌아와도 무엇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세상. 오늘은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웠다가, 내일은 세상이 절망적이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분명 어제까지는 너무 미웠던 사람이 오늘의 어떤 작은 행동 하나로 예뻐 보여도 그러려니 하는 세상. 서로의 다름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떠올렸다.  끝에는 지하철에서의 우리가 있었다.


이제는 멀어진 그 사람과의 기억들 중 선명한 빛을 내는 부분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날 그때였다. 또 한 번 너에게 놀랐다. 나는 그저 느끼고 생각하기만 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 내 귀로 듣게 해 준다는 것 때문에 그랬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라는 물음에 대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어.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에게. 다정한 마음이 땅에 떨어진 걸 보고 결국 등을 돌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을 그리는.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말하고 싶다.


땅에 떨어진 다정한 마음을 주워 먼지를 털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네 손에 그 마음을 다시 쥐어주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었다. 여전히 땅 위엔 네 마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나에게 너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으니. 그럼에도 나는 꼭 말하고 싶다. 결국엔 네 시선을 따라 너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은 재건되리라, 너의 배려가 깃든 설계로 그 유토피아는 편안하리라.라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원할까? 어떤 마음을 품고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을까? 모두의 가상국 안에서의 우리는 행복할까? 궁금했다. 다만 확실한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디스토피아로 느껴지는 사회에 대한 관용이 베풀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기특해졌다. 이 끝없는 우울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너와 지하철에 앉아 , , 소리에 미소 짓는다. 서울의 야경이 쏟아질 듯한 별빛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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