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채 Aug 30. 2022

우린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해

| 외롭고 우울한 나

감정은 다채롭다. 미움을 들여다보면 그리움, 여전한 사랑, 분노들이 우후죽순 섞여있다. 슬픔을 들여다보면 분노, 행복에 대한 갈망, 축적된 우울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하나로 정의되지 못할 감정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우울함, 외로움은 내가 구렁텅이에 빠졌을  찾아오는 감정이라 느꼈었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고, 문득 찾아올 때면 감정에 흠뻑 젖어 하루고 이틀이고 피폐한 마음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감정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오며 결코 삶에서 떼어낼  없는 것이라는 .


그 잔인한 사실이 싫었나 보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울하고 외로움에 발버둥 치는 내가 싫었으니까. 그 감정에 굴복하고야 마는 내가 꼴 보기 싫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곁에 둔다. "어, 왔니?" 인사를 건네보기도 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나에게 로망과도 같은 일이다. 나의 삶과 어떤 이의 삶이 맞닿아 함께 흐르는 것. 그 맞닿은 시간 속 다정한 마음을 나누고 깊은 신뢰를 쌓아가는 것. 더 나아가 나를 바로 세우고 자아의 확신을 갖는 것. 나는 그 모든 것을 함께 살아가는 어떤 이와의 관계에 미루어뒀었다. 여전한 로망이지만.


나는 조금 냉정해지기로 했다. 삶이 맞닿는다는 것이 곧 자아가 바로 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맞닿은 어떤 이와 무조건적인 다정하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 그래서 로망은 로망으로 두고(그마저의 로망도 없다면 삶이 퍽퍽하지 않겠는가) 하나의 로망을 더 두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간다. 일평생을 나로 살아왔음에도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나와한평생 맞닿아 산다. 나는 다정한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쌓아야 할 존재가 나여야만 자아가 비로소 바로 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울과 외로움에게 다정한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우린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해


감정은 파도와 같이 밀려왔다가 모래알을 내뱉고 다시 밀려나간다. 나는 그 모래사장에 앉아 떠밀려온 모래알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그것은 기쁨이다. 때론 들이치는 파도에 발을 담그고 내 발을 훑고 지나가는 파도를 느낀다. 그것은 괴로움이다. 근처로 들이치지 못하는 파도를 바라보다 문득 내 발자국이 가득한 모래사장을 둘러본다. 그것은 외로움이다. 하지만 파도는 다시 밀려들어와 모래알을 뱉고 나는 반짝이는 모래알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또다시 기쁨이다.

나와 함께할 무수히 많은 감정은 찰나다. 파도처럼 스쳐가며 무언갈 우리 곁에 두기도, 빼앗기도 한다. 우리는 무수한 찰나를 살아간다. 결국 찰나란 순간이 빚어낸 나일뿐, 그저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일평생을 함께  나에게  다정하기로, 다채롭고 종잡을  없는 나의 찰나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함께하고자 하는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라니. 어쩐지 어디서도 얻지 못할 영원한 내 편이 생긴 것만 같다. 누군가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나는 나를 사랑해줘야지. 그렇지 않는다면 너무 가여우니까. 이 세상을 견뎌내는 마음으로 사는 나에게 너무 가혹하니까.


나는 살기 위해 적는다. 나는 살기 위해 나와 함께 살아가기를 택했다. 우울함, 외로움은 지나치는 찰나이지만 나 그 자체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간다.  

이전 12화 괴롭다는 건 성장하고 있다는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