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름을 보내주는 듯 쏟아지던 비가 뚝 그쳤다. 하늘은 맑은 하늘을 보여주고, 늦은 밤 쌀쌀한 바람을 토해냈다. 영원할 것 같던 더위도, 비도 모두 지나 우리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이 문장에 의지하며 시간을 견뎠다. 계절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괴로움도 슬픔도 행복도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슬픔도 격렬한 행복도 조금은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그 말이 미웠다. 지나간다더니 지나 가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우울했다. 영원히 내리는 비를 맞고 있다 느꼈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 심어줄 뿐 결국 나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그 말이 나를 희롱하는 것만 같았다.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 서있는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 하나에 희망을 걸고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한심했다. 그런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견뎌내지 못하고 비워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싫어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조차도.
마음 한편에서 슬픔이 유리구슬처럼 빛난다.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슬픔에 발이 묶여 몇 번이고 넘어진다. 무거운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하루를 버틴다. 머릿속에 아주 길고 커다란 선들이 어지럽게 엉킨다.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고, 생각이 글로 적히지 않는다. 그 속에서 속삭인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같은 마음으로 무너진다. 또다시 원점이다.
미움이 짙어져 괴로움이 된다. 내 마음에서 미움과 미움을 가장한 사랑과 그리움을 덜어내면 될 것을. 나는 그러지 못하고 결국 한가득 안아 든 감정에 괴로워 앓고 있다. 이 순간들도 결국엔 지나가겠지. 영원할 것 같은 이 마음도 시간에 따라 희미해지겠지. 행복이 찰나였던 것처럼 이 괴로움도 찰나가 되어 나를 스쳐가겠지. 그럼에도 여전히 빗속에 서 무력하게 젖어가는 나를 바라본다. 넌 그 문장에 너무 많은 의지를 하고 있어. 넌 지나치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같은 삶을 살고 있어.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말들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그럼에도 몇 번이고 쓰고 지운 문장을 놓지 못한다. 희망의 실오라기를 놓친다면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망가진 현재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이 비가 그치길, 괴로움이 스치길, 슬픔의 긴 터널의 끝을 보길 기다리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되뇐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삶의 아름다움과 암울한 현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조금 씩씩하게 일어선다.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비가 영원히 오지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