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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Jun 03. 2024

내 정맥은 소중하니까요

항암관(케모포트:chemoport) 삽입

 황금연휴가 우리를 반겨주던 5월의 어느 날, 연휴를 앞두고 버킷림프종(Burkitt’s lymphoma) 진단을 받은 김은영님이 우리 병동으로 처음 입원을 왔다. 이분이 진단받은 버킷림프종은 암의 진행이 빠르고 공격적이지만 항암 치료의 효과는 높다고 알려진 림프종이다.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항암제 투약을 시작하는 것이 환자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휴에 입원 온 탓에 빠른 항암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항암관(케모포트 삽입 : chemoport insertion)을 삽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항암제는 정맥, 척수강, 피하, 구강 등을 통해 투약할 수 있다. 이 중 정맥을 통한 투여가 가장 흔한 항암제 투여 방법이다. 일시적인 질병으로 입원한 경우는 말초 정맥에 주사 바늘을 꽂아 수액이나 치료약을 주입하지만 항암제는 보통 큰 정맥에 바로 투여할 수 있도록 항암관(케모포트),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진행한 후 투약을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항암제는 그 자체로 발암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항암제를 다루거나 투약할 때는 주입하는 곳 이외의 부위에 항암제가 유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초 정맥으로 항암제를 투약하다가 일혈(항암제가 혈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이 생겼을 경우 그 주변의 피부 조직들이 괴사 될 가능성이 있다.


 연휴에는 항암관 삽입 시술을 할 수 있는 시술실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연휴 동안에는 말초 혈관으로 항암제가 투여된다고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김은영님의 림프종 종류는 하루라도 빨리 항암제 치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있지만 치료를 빨리 시작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항암제 투여 부위가 아프거나 이상이 있을 경우 바로 말해달라고 교육을 하고 우리도 잘 관찰하겠다고 했다. 김은영님의 동의 하에 말초 정맥으로 항암제 투여가 결정되었다. 병동에서 제일 경력이 오래된 간호사가 정맥 주사 준비를 했다. 매번 항암제 투약 때마다 혈관 개방성을 확인하고 통증, 발적(빨갛게 붓는 것), 그 외 불편감은 없는지 확인, 또 확인했다. 항암제 투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행히 사흘 연휴 후에 바로 항암관을 삽입할 수 있었고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은영님은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2주간의 항암제 투약을 마치고 큰 문제없이 퇴원했다. 항암제가 투여되던 팔도 통증, 발적 등의 문제도 관찰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김은영님이 다음 입원을 왔을 때 생겼다. 한쪽 팔이 모기 물린 것처럼 빨갛게 부어있어서 환자에게 물으니 지난번에 항암제를 맞았던 부분인데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부랴부랴 의사에게 보고하고 피부과 협진을 보았다. 처방된 연고를 제공하고 소독을 챙겼다. 하지만 혈관 깊은 곳에서 괴사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꽤 깊은 상처가 생겨 결국 성형외과 협진까지 보며 치료를 계속했다. 김은영님이 진행하는 항암은 하필 호중구(절대 호중구, ANC: 감염 시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백혈구 중 하나)를 임의로 저하시키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입원 와서 항암을 하면 상처 회복이 더욱 더디게 되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항암 치료가 차수를 더해가면서 팔에 생긴 상처는 다행스럽게도 점점 아물어갔다. 6차에 걸친 항암 치료 종료 후 성형외과에서 상처 부위 봉합 수술을 받고 퇴원하신 김은영님은 다행히 이제 병원에 오지 않으신다. 김은영님이 진행하는 항암은 항암제 투여 기간이 유난히 길었다. 긴 재원기간에도 불구하고 김은영님은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주위 환자들을 잘 챙기며 병동의 유명인사로 지내셨다. 이런 밝고 긍정적인 마음도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일조했으리라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던 김은영님이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께...

 많은 고민 끝에 올리는 글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 혼자도 많이 숙고하고 동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는 글을 읽고 ‘병원을 잘못이다, 간호사의 잘못이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연휴에 빠른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항암이 들어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 이상 여부를 관찰했고 항암제 투여 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고 시작한 치료임을 밝혀둡니다.

 20여 년 전, 대학 새내기 때 국어와 작문(교양 국어) 시간에 ‘가장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다.’라고 선생님께서 해 주신 글짓기에 대한 가르침에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커버이미지 by @mumu_pat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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