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뇌 병변은 너무 어려워

by 미리내

첫눈이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기가 막히게 딱 맞았다. 밤이 깊어가도 눈발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간호사들은 출퇴근길이 항상 걱정이다. 한 시도 환자 곁을 떠날 수 없기에 기상 악화에도 기필코 출근을 꼭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브닝 근무 후 굵은 눈발을 어떻게 헤치고 집에 갈지, 나이트 근무자들은 무사히 와 줄지 걱정이지만 오늘 제일 큰 걱정은 나의 퇴근이 아니라 처치실에 나와있는 김태균님이다.


김태균님은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L) 진단을 받은 환자로 뇌병변 림포마로 치료를 받던 환자이다. 골수나 다른 부위에 림프종 침범은 없이 ‘뇌’에 국한된 병변을 가지고 있던 분으로 항암을 받는 동안 큰 부작용 없이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세포 채집까지 마치고 즐겁게 퇴원하셨던 분이다.

지난 입원 때 검사 진행 때문에 김태균님 팔에 혈관 주사를 놓아야 했는데 혈관이 있다고 바늘을 삽입했는데 연이어 실패하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나에게 오히려 위로와 응원을 해주셨던 분이었다. 미안함에 이말 저말 나누다 보니 김태균님은 우리 집 바로 건너편에 사시는 이웃 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가다 만다면 꼭 커피 한잔 하자고 약속하고 지난번 퇴원을 보내드렸던 분이다.


엊그제 조혈모세포 이식 전 마지막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김태균님은 내가 알던 김태균님이 아니었다. 2-3주 만에 머릿속 암이 자랐는지 복시가 심해져 눈도 잘 못 뜨는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가까운 거리도 이동하기가 어렵고 부쩍 수척해지고 지난 항암 때문인지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있었으며 낯빛도 창백해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태변화로 치료 계획이 변경되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급하게 방사선 치료 스케줄을 잡아 치료를 마치고 왔는데 치료 후에 심한 오한과 구토 증세가 있었다. 온찜질 팩을 적용하고 상태를 지켜보니 다행히 혈압, 체온의 변화는 없어서 증상이 나아지길 기다렸고 한 시간쯤 지나니 상태가 조금 괜찮아졌다. 한숨 돌리고 뇌 MRI를 찍으러 내려갔다. 검사를 다녀오니 또 이번에는 불러도 반응 없고 자고 있는 양상(mental drowsy)을 보였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혈압, 체온의 변화가 없었고 양 팔다리의 움직임이 가능했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김태균님을 병실에 혼자 둘 수 없어서 간호사실 바로 옆 처치실로 옮기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자고 있는 김태균님은 쉽사리 깨어나지를 않았다. 급하게 스테로이드제를 투약하고 혈액검사를 했다. 검사 상 큰 문제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환자가 돌발행동을 보이지 않는지 관찰하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보호자에게 현재 김태균님의 상황을 알리고 보호자 상주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김태균님 배우자 분이 바로 병원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바로 오실 상황이 된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하필 첫눈 오는 날 밤에 대중교통으로 오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그 머나먼 길을 걱정 한가득 안고 와야 하다니… 가뜩이나 기나긴 병원 오는 길이 더더욱 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질환이든 뇌와 관련되어 있으면 치료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림프종이 뇌에서도 발견된다면 일단 나도 걱정이 앞선다. 당장은 문제가 없더라도 종궤가 뇌의 특정 부위를 누르며 뇌압이 상승할 수 있고 김태균님 같은 복시, 구토, 두통, 호흡 저하, 기억력 저하, 각종 인지장애 등등의 다양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나타나고야 마는 뇌 병변 관련 증상들을 보며 '암'이라는 놈이 참 밉고 또 두렵기도 하다. 어떤 부위든 암은 싫지만 가장 싫은 암을 꼽으라면 뇌와 관련된 암이다. 그만큼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너무 힘들어지는 암이다.


나는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올랐다. 눈을 헤치고 집에 가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하고 있을 김태균님 배우자를 생각했다. 병원으로 오는 길이 많이 힘들지 않기를... 그분이 병동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이나마 정신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퇴근했다.


눈발이 날리는 밖은 걷기도 힘들고 운전도 힘들다. 곳곳에 미끄러움과 흙탕물이 도사리고 있다. 앞으로 치료를 이어갈 김태균님도 눈길을 걷는 것처럼 많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곧 밝은 햇살이 비치며 얼었던 눈도 녹고 길도 정리가 되겠지. 그들의 앞길에 밝은 햇살이 비춰주어 어려운 과정들은 어서 눈 녹듯 사라지기를 또 바라본다.



P.S. 그동안 새 글을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와 죄송하다는 인사를 먼저 전합니다. 9월부터 병원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의 논문 작성 압박으로 글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네요. 더 늦어지기 전에 글을 올려야지 항상 마음으로만 생각했네요. 앞으로 꾸준히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더 부지런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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