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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Feb 15. 2023

와이셔츠의 유언

집 안에 도는 흉흉한 소문의 근원은 바로오~


브런치 메인에 플래카드를




우리 집 '주방가위의 유언'이 너무 슬펐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곱디고운 눈을 가진, 어떤 에디터 의 마음을 '똑똑' 두드린 것일까? 몇 주 전 '주방가위의 유언'이란 내 글이 잠시 브런치 메인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평소 메인을 들여다보지 않는 나로선, 하마터면 그런 사실을 까마득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절친한 작가 님을 통해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런치 메인에 플래카드를 걸듯 부러진 '주방가위'의 명복을 성대히 빌며 보내줄 수 있었다. 


아놔, 그란데 그게 뭣이라꼬 또 촌시럽게 괜스레 뿌듯하고, 막막 가슴이 뭉클하고 그랬던 것일까. (보고 있나? 주방가위? 이런 주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생색내기 푸하하하하하하!)








주방가위의 유언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엔 인간만 모르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 집주인인, 그놈(?)의 특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다, 그렇지만 그 특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문제의 그날, 여느 때처럼 저녁을 하고 있었. 정신없이 바쁜 그때, 첫째 아이가 찾아와 종이를 오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멀리 가지 않고 익숙하게 싱크대 벽에 걸린 주방가위를 집어 들었다.


띠로리~ 그란데 이게 머선 일이란 말인가? 얇은 종이 한 장 사뿐히 자르려는데, 그만  소리 하나 없이 한쪽 손잡이가 부서지는 게 아닌가? 

그때였다.



"으읔.. 으음.. 그거 알아? 이 집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


"아앜, 깜짝이야. 가위, 네가 지금 말한 거니?"


"그으래... 마지막 유언이 있어서..  말 못 하는 척해야 하는 게 이 세계 룰이지만... 곧 죽을 건데, 지금 룰 따위가 뭣이 중헌디. 산 가위 소원도 들어주는데, 내 유언 좀 들어줘."


"아니..  미안한데 유언은 좀 있다 듣고, 우리 집에 이상한 소문 그게 뭐시여?"


"아.. 그게 말이야. 이 집 가전 가구들, 그러니까 물건들 사이에 오래된 소문이 있는데... 이 집에 들어오면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내 유언도 그 소문이랑 연관이 있어."


"헐~~ 그런데... 그 소문이 왜 났는지 알 것 같네.. 인정 인정. 나도 최근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노란 가위 네 유언은 뭐야? 룰을 깨고 용기 내어 얘기해 줬으니 나도 꼭 들어줄게!"



그렇게 그 세계의 룰(말 못 하는 척)을 어기고 말 한 용감한 주방가위 덕분에, 오랫동안 집에 돌고 있던 흉흉한 소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동안 '끼익 끼익', '부웅부웅', '탁탁탁'하는 등, 자기들 만의 언어로 '날 그만 보내줘'라며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소란들이 다 계획된 것이었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된장, 어맛 깜짝야.)



"그러니까 내 마지막 유언은... 제발 날 그냥 편히 보내줘. 추하게 생명을 연장해서 사는 건 의미가 없어. 가위답게 살다가 가고 싶어. 그러니 붕대 따위 칭칭 감아서 몇 년을 더 쓸 생각일랑 하덜 마러. 제에발~~~~~~~~~~"






그러니까 그 사태는, 목숨이 다한 물건들에게 연명치료를 해서라도 몇 년을 더 쓰고, 한 번 집에 들어온 것은 죽어도 쉽게 집 밖으로 보내주지 않는 신식 구두쇠인 신랑과, 장난감. 가구 등의 수리는 물론이거니와, 도배, 실리콘 보수작업, 헤어커트 등 뭐든 고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길 즐기며 연명치료를 손쉽게 돕는, 맥가이버 손의 가 크로스하여 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뤄낸 거시였던 거시였다.


 주방가위의 유언을 들어주었기에, 집 안에 도는 흉흉한 소문도, 또 앞다퉈 보내 달라며 '끽끽' 앓는 소리들도 한동안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띠로리~ 그러나 그 모든 건 나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와이셔츠의 유언




재작년까지는 좀 바쁘더라도 집에서 손수 신랑의 와이셔츠를 세탁하고 다렸었다. 그러나 작년 중순쯤 하는 일의 수가 늘며 바빠진 나는, 신랑과 상의하에 드디어 와이셔츠를 세탁소에 맡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단이었다. 안 그래도 유통기한(?) 이상 입은 와이셔츠들은 천이 많이 얇아져 있었는데, 세탁소에 맡겨지면서 독한 약품처리를 하다 보니 몇 번 안 맡기고 금세 등 부분이 다 해져 온 것이다.



"이제 이 와이셔츠는 집에서 빨자. 등이 다 해졌어. 한 번만 더 맡기면 아마 찢길 것 같아. 다리지도 마, 외투 안에 받쳐 입기만 하면 되니까. 그냥 막 빨아 입고, 다 떨어지면 버리자."


"그 해진 옷을 더 입겠다고? 요즘 시대에 그렇게 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좀 버리자."



정말 황당하여 말이 안 나왔지만, 신랑과 살며 이런 부분에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나는, 이제 그 모습마저 귀엽게 여길 지경이니 하산할 날만 기다리며, 그저 나사 하나 빠진 사람마냥 미친 듯 웃어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들을 꺼내 건조기로 옮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흐흐흑, 흐흐흑.. 제발 나도 좀 보내줘"


"아앜~ 깜짝야!! 뭐야 와이셔츠 너도 말하냐? 너도 룰을 어기기로 한 거야? 이래서 소문이 참 무섭구나? 그렇게 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누가 가르쳐 주디? (주디는? 인형인데... 허헉 죄송)


"나 좀 봐... 나 등이 다 해지다 못해 찢어졌잖아. 날 얼마나 더 찢어발겨서 괴롭게 할 작정이지? 제발 부탁이야. 와이셔츠답게 살다가 가고 싶어. 연명치료도 안 되는 날, 도대체 왜 보내주지 않는 거야!!!"


"아.. 라따 라따 아라따. 나만 믿어. 그럼 아파도 좀 참아 알겠지!!"



그렇게 나는 해지다 못해 찢어진 와이셔츠의 동의를 얻고, 구멍이 난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더 많이 찢어 버렸다. 이젠 정말 신랑도 보내 주겠지 싶어, 퇴근한 신랑에게 다 마른 와이셔츠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기야~ 세탁기 돌리니 이렇게나 더 많이 찢어져 버렸네? 이제 진짜 버려야겠지?"


"보자 보자~ 어디 보자~ 음... 조금만 더 찢어지면 버리자. 어차피 속에 입는 거니까! 하핫."



역시 신랑이란 이놈은 강적이었다. 난 겉으론 웃으며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말 드럽게 안 듣지 넌~ 맘대로 하셩~ 어디 브라탑이 될 때까지 입어 보라지 그래?!!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몇 달을 더 와이셔츠가 '낑낑' 신음하는 소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정확히 2월 15일 오늘 오후 7시 즈음!! 수요일이라서 평소 보다 일찍 퇴근한 신랑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게 말한다.



" 자기야 나 이 와이셔츠 이제 진짜 버릴라고~!!"


"푸하하하하하, 거짓말 치지 마. 어지가이 버리겠다. 푸하하하하하. 왜 브라탑이 될 때까지 입지 그래?"


"아냐 이것 봐 진짜 버려야 해~!!"





팔꿈치가 다 떨어져도 입고 출근한 신랑. 대단해!!





"이것 봐 이제 팔꿈치까지 다 찢어졌어~!"


"헐~ 이거 뭐야? 사실 등은 자기 좀 버리라고 내가 손으로 살짝 더 찢었거든. 그래도 더 입는 다길래 진짜 자기는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거든. 푸하하하하"


"뭐야 진짜야? 그럼 이 팔꿈치도 자기가 찢은 거 아냐?"


"뭔 소리야. 나도 처음 보는데.. 자기가 오늘 입어서 찢어 온 거 아니야? 찢어진 거 보고 입고 갔다 왔을 리는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내가 찢어 놔?!! 푸하하하하"


"아! 오늘 아침에 보니 팔꿈치까지 찢어졌길 마지막으로 한 번만 입고 버린다고 입고 갔다 왔지~!!"


"짝짝짝(손뼉 치며) 부라보, 멋지다 연진아! (엄지를 치켜세우며)와~ 진짜 자기는 인정해 줘야 해, 인정!! 여기 좀 대봐 사진 좀 찍자. 내가 진짜 오늘은 이걸로 글 쓴다!!!!! 와~~~ 세상에. 푸하하하하"




세상에.. 신랑은 오늘 아침에도 저 등짝과 팔꿈치가 다 찢어진 걸 보고도 '마지막'으로 입고 버리려고, 회사에 저 너덜한 옷을 입고 갔다고 했다. 아마 회사 사람들이나 업무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중 외투 안에 가려진 와이셔츠의 상태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신랑이 말한다.



"왜 이걸로 글을 써!! 나를 거지로 보고 자기도 그렇게 보는 거 아니야?"


"자기야 걱정 마!! 요즘은 거지도 이렇게 찢어진 옷은 안 입어~푸하하하하하하!!"



누군가는 너무나 헐벗어 보이는 솔직한 내 글이나 답글들을 보고, 자존감이 낮다, 또는 과하게 겸손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자존감이 낮지도, 그리 겸손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저 못 배운 걸 못 배웠다고 하고, 과한 칭찬을 받아서 과찬이라고 하며, 없는 걸 없다고 하는 것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어떤 것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저  '홍시'보고 '홍시'라고 말하는 것뿐이니 말이다.



"자기야 뭐가 부끄러워~ 다 사람 사는 이야기 인 걸, 같이 웃자고 쓰는 글이야~ 그리고 다 떨어진 옷을 입는 자기 특기도 내겐 거지 같지 않고 귀여워~ 푸하하하하하하"





등이 다 떨어진 채 몇 개월을 더 입고 다닌 신랑!!!



잘 가, 고마웠어~





결혼 후, 8년을 아껴 쓰고 고쳐 쓴 덕분에, 요즘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고장이 나는 우리 집 물건들... 여전히 '낑낑'거리는 세탁기, 자석이 고장 나서 수동으로 접어 닫는 냉장고, 오늘은 또 가스레인지 후드가 새로 고장이 났는데....


된장~!! 그중 어떤 용감한 물건이 내게 또 말을 걸어올까...?!!




"아!!! 와이셔츠~!! 드디어 내일, 너의 약속을 지키는 날이야. 널 이제 진정으로 보내주겠어~!!

몇 년 동안 내 신랑을 멋지게, 말끔하게 꾸며 줘서 정말 고마웠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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