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냈던 재원이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은행 홈페이지에서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더니, 낯익은 얼굴의 사진. 실종아동이나 장애인, 치매 노인을 찾는 사진이 화면 아래쪽에 게시되어 있었다. 내 기억 속 아이가 아니었으면 했지만, 이름과 인상착의 모든 것이 재원이가 분명했다.
25세 첫 발령, 처음으로 만난 아이들은 재택학급 소속의 학생이었다. 특수교사가 신체 활동의 심한 제한으로 통학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복지 시설이나 집으로 직접 방문하여 가르치는 일을 재택·순회 교육이라고 했다. 재택·순회 교육을 위해 만든 학급을 재택학급이라고 불렀다. 지적장애가 있는 재원이와 정원이 형제, 진행성 근육병으로 힘들어하던 동우, 하루에도 여러 번 뇌전증 증상을 보이던 보람이, 뼈가 잘 부러져 항상 조심해야 했던 명희가 우리 반 학생이었다.
나의 첫 번째 수업은 재원이 집에서 시작했다. 한 손에는 노트북을, 또 다른 손에는 교구를 들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걸었다. 나의 저질 체력을 탓하며 가쁜 숨을 몰아쉰 후 재원이 집에 도착했다. 집이자 방이었던 그곳에는 재원이, 정원이 형제만 있었다. 한쪽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소주병과 약 봉투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조화롭지 못한 병과 봉투는 처음부터 꼭 붙어있어야 하는 물건이었던 것처럼 방 안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누군가 열기 전엔 나갈 수 없는 그곳은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싱크대가 있는 부엌, 방보다는 한 단 아래 있는 바닥, 물 빠지는 곳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아빠가 일 나갔다 들어오기 전까지의 긴 시간 동안 형제는 수챗구멍 하나에서 배설도 해결하고 손과 발도 씻었다. 구명 옆 싱크대 위의 밥솥에서 밥도 퍼서 둘이 먹었다. 글도 읽고 말도 잘하는 재원이가 왜 재택학급으로 오게 되었나 서류를 살폈다. ‘잦은 가출’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잦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엄마, 부인의 병원 진료와 직장 일로 바쁜 아빠는 가출한 아들을 찾는 일조차 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가출한 지 일주일도 더 지나 돌아온 재원이 엄지손가락이 누군가에 의해 잘린 일도 있었다. 재원이 아빠 자필 의견서 내용은 이러했다. ‘지적장애 형제를 돌보기 힘듭니다. 등하굣길에 재원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재택·순회 교육이라는 제도를 이용하고 싶습니다.’ 글자에도 부모의 힘듦이 묻어나왔다.
그런 재원이에게 나는 날개를 달아주고 말았다. 신규 교사 의욕만으로 함께 나갔던 미술대회에서 재원이는 제법 큰 상을 받았다. 상품은 킥보드였다. 날개옷을 입고 떠나버린 천사처럼 킥보드를 타고 광명에서 서울까지 멀리멀리 달아났다. 은근히, 재원이의 미술 실력을 알아봤고, 인솔하여 서울 어느 큰 공원까지 다녀온 나를 주위에서 칭찬했었는데. 재원이를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리던 며칠 동안 난 나무꾼이 되어 버렸다. 보여주지 말고 접하지 않아도 될 킥보드를 주었다며 후회했다.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오히려, 신고한 후 대게 일주일 안에는 찾았다며 재원이 아버지는 날 위로했다. 재원이가 나간 지 4일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행히 새벽 4시 30분, 첫 차를 운행하기 위해 출근했던 역무원의 전화를 받은 후 개봉역에서 재원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혹시라도 개봉역에서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꼭 잘 봐주세요!”라고 외치며 택시를 잡았다. 새벽이라 뻥뻥 뚫린 도로 상황에 얼마나 감사했던지! 가슴을 내리 쓸었던 신규 교사의 새벽이었다.
킥보드 사건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사기그릇을 만지는 일과 같음을 깨달았다. 그냥 무심코 내려놓은 손길에도 ‘와지작’ 금이 가며 깨질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한 번 툭 식탁에 잘못 내려놓으면 그릇도 상하고 소중히 다뤘던 마음도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주어진 사기그릇에 예쁜 색깔의 찬을 잘 담아내지 못할까 봐 조바심만 내었지, 재원이가 원하는 공간에는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질 못했다. 꽉 막힌 공간을 떠나 훨훨 날아오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재원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마치고도 그렇게 곧잘 집을 뛰쳐나갔다. 다행히 실종아동찾기 홈페이지에 일주일 이상 남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원이가 식탁에 둘러앉아 네 식구 오순도순 밥 먹는 것이 편안하고도 참 좋은 일임을 알게 되는 날이 오길. 머무는 곳이 따뜻한 안식처여서 이제는 날개 달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