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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내 생애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

서른 살, 사직서를 냈다. 일을 끝내겠다는 말을 멋지게 전달하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사직서의 양식과 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월 몇 일부로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쓰면 끝이었다. 사직서를 품고 있다가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제출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호기롭게 내는 장면을 상상했다. 흰 봉투를 올려놓은 후, 단출하고 아담한 상자 하나 손에 들고 문을 나서면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직서를 첨부하여 담당자가 공문을 쓰고, 작성한 공문을 상위기관에 보내어 접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교무실 조용한 구석 자리에서 교감 선생님이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말을 나직하고도 단호히 건넸다. 내 딸이면 이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못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며. 결국, 나를 잡은 건 단호한 어른의 충고도, 앞날에 대한 걱정도 아닌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한별이, 뇌 병변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대학교에 다니던 언니와의 터울이 제법 있으며, 집안에서는 귀여움을 받는 예쁜 막내였다. 뇌의 기능 장애로 몸이 경직되어 있고, 균형감각에도 문제가 있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친구였다. 한별이가 그날따라 화장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변기에 걸터앉은 채로 눈에도 힘이 들어가고 콧잔등이 빨개졌다. 뒤처리를 도와주기 위해 기다리다가 나도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모은 채 엉덩이를 살짝 들고 앉았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뽀글뽀글한 머리카락, 힘을 줄 때마다 코 사이로 모으는 눈동자, 살짝 편평하고 동그란 코가 귀여웠다. 눈이 마주치자 함께 있는 자리가 다소 무안했든지 힘이 들어간 눈동자가 풀리면서 나를 보며 웃었다. 순간 스쳐 간 건, 반짝이는 별이었다. 빛나는 별이 눈동자로 떨어졌다. 한별이 부모님이 당신들에게 온 딸 이름을 한별이라고 결정한 날도 별빛을 보았으리라. 화장실에서 기다릴 때마다 들어오는 이의 발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누구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유~똥 누는 일에 집중해야지.”라며 재촉하느라 놓쳤던 순간의 반짝임을 그날은 볼 수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시선을 마주쳤던 까닭이다. 그날 나는 사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찾아왔다. 정현이의 무단결석. 키도 훤칠하고 눈매도 서글서글한 정현이는 전학해 온 다음 학기부터 전교 회장이 되었다. 정현이만큼 글도 잘 읽고 친구를 잘 챙기는 고등부 학생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 학교에 있는 전공과에서 취업 훈련을 받으면 하루 8시간 일하는 직장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럼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 5식구 사는 형편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서 순한 눈빛이 사라지더니 매몰찬 시선으로 상대방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지 않아 찾아갔던 날, 좁은 집에서 숨바꼭질하듯 여기저기 숨던 정현이는 결국 집 밖에 있는 벽돌 한 장을 들었다. 혼자서는 설득하는 데 힘들 것 같아 함께 찾았던 교생 선생님, 사회복무요원, 나까지 포함한 3인에게 던질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정현이는 결국 벽돌이 아닌 차가운 말을 내던졌다. “이제 학교 절대로 안 간다고!” 정현이는 그렇게 방황하다 몇 주 후 혼자 버스 타기를 어려워하는 엄마와 함께 학교에 왔다. 느릿하게 인사하는 엄마 뒤에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는 떠났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난 신규 때부터 어설펐다. 학생을 대하는 일, 학부모와 상담하는 일, 동료 교사와 관계를 맺는 일 모두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수교사라는 직업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처음부터 서툴렀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가끔은 지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은 웃으며 아이들 옆에 있다. 여기서 고백해야 할 일은 날마다 무언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고민이라는 것은 이런 내용이다.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이는 일, 화장실도 함께 해야 하는 일을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을까? 우아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직장은 없을까? 편하게 밥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직업의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또는 전공과까지 다 있는 특수학교가 좋을까? 아님, 일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근무하는 게 나을까? 몸이 편한 근무환경이 좋을까 아니면 마음이 편한 곳이 최고일까? 등등. 이런 크고 작은 고민을 안 하고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다른 직업을 꿈꾸어보는 게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는 건 아니겠지. 머릿속에는 엉킨 실타래가 여러 개다. 실타래를 천천히 풀기 위해 글을 쓴다.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분명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밝은 미소에 감탄하며 지냈던 날이 더 많다. 보석 같은 순간을 글로 남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지금이라도 나와 눈 마주치며 손잡아주었던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내 생애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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