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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Oct 22. 2023

남편 없이 살아갈 세상

지적장애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짧은 이야기

2023년 4월 1일 아침, 남편의 몸은 굳어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젯밤 피곤하다고는 했지만 달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움직이지 않는 남편을 처음 본 건 딸내미이다. 첫째 준희는 서럽게 울었다. 사흘 내내. 둘째 준범이를 삼일장 치르는 동안 친정엄마에게 봐달라고 부탁했다. 발인 날, 어찌할지 고민했다. 준범이가 그래도 상주인데. 아들이 아빠가 가는 길,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준범이 학교에 전화를 했다. "준범이 아빠 부친상이어서요. 학교를 얼마 동안 못 갈 것 같아요. 출석에 문제없는 기간은 며칠이죠?"

선생님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조부상은 규정에….” 준범이 할아버지 이야기인 줄 알았나 보다. 내가 고쳐서 다시 말했다. “준범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예요.” 놀라는 기색이 핸드폰을 타고 전해졌다. “삼일장은 다 치렀으니, 화요일부터 보낼게요.” 만우절 날 거짓말 같이 사라진 내 남편. 정리하는데 삼일은 짧았다. 준범이를 학교에 보내야 정리를 할 수 있는데. 해야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화요일 아침, 머리가 무겁고 속이 시끄러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며칠 더 쉬고 보낼게요.”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학교 선생님에게 걸려 오는 전화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준범이 등하교를 위해 교문 앞에 늦게 도착해도 전화가 없다. 좀 늦으면 “어머니, 어디까지 오셨어요??”라든지, “어머니, 하교 시간보다 늦게 오시면 안 되어요.” 등의 말이 있을 법도 한데. 핸드폰에 학교 번호가 뜨면 늘 긴장이 된다. 준범이가 학교에서 화장실 실수를 한 이후로는 더더욱. 준희가 스스로 화장실 갈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못한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쪼그라든다.     


오늘은 몸이 너무 아프다. 속도 울렁거리고. 목도 따끔한 게 감기가 왔나 보다. 준범이 현장체험학습 다녀오는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회 권사님에게 부탁했다. “♡♡ 교회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준범이 반 친구들이 다 같이 내린대요.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옮기기 전에 약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라고 그런다. 마침 권사님에게 전화가 온다. “♡♡ 교회 앞에서 30분째 기다려도 아무도 안 와요.” 선생님에게 확인했더니 ○○ 교회란다. 또, 여러 명이 나 때문에 기다리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잘 안 나온다. 


준범이가 있는 특수학급에서 숲 체험하러 간다고 한다. 준비물은 ‘물, 과자 한 봉지(약간의 간식)’라고 적혀있다. 간식은 무엇을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준범이가 친구들과 함께 먹겠다며 초코송이를 골랐다. 친구와 함께 먹으려면 한 봉지로는 부족해 보였다. 세 통? 네 통? 과자와 음료수를 많이 사서 보내고 싶은데, ‘한 봉지’와 ‘약간’이라는 말에 멈칫했다. 준범이 아빠가 하늘나라로 간 후에 동사무소에 신청한 여러 가지 지원 문제는 아직 답이 없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오늘 과자 사는 건 괜찮지만, 앞으로 준희 수학여행과 학원비가 걱정이다. 준범이 치과도 가야 하는데.


세상은 갑자기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빨리 휴대전화 이름도 바꿔야 하고, 은행도 들러서 남편이 죽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주저주저하면 상담 창구에서 메모지에 번호를 붙여 가며 친절하게 필요한 서류에 관해 설명해준다. 하지만, 누구도 나 대신 서류를 준비해줄 수는 없다. 어려운 일투성이다. 혼자서만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 오늘은 준범이 머리 이발하러 미용실에 다녀왔다. 이것도 역시 처음 해보는 일이다. 준범이 이발은 늘 남편이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교문에서 만난 준범이 선생님이 그랬다. 준범이가 두 손가락으로 엑스를 그리며 “이제 아빠 못 봐요. 아빠 심장이 안 움직이니까요.”라고. 준범이는 모르는 줄 알았다. 남편이 다른 세상으로 간걸. 다 알고 있었다니. 다 컸네. 내 강아지. 준희와 준범이와 함께 셋이서 살 세상이 무섭고, 걱정되지만, 어찌어찌 될 것이다. 아니, 잘 될 거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나는 49세, 장명주니까. 준희와 준범이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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