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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Jun 12. 2022

소만, 작게 차오르길 소망

찬란한 오월아, 천천히 채워져라! 소소한 이 행복이 오래 오래 머물도록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소만(小滿) : 입하와 망종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5월 20~21일 무렵이다. 태양의 황경이 60°이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이 바빠진다. 이른 지역에서는 모내기에 들어가며 보리를 수확한다. 만물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가운데 날씨가 불안정하여 한여름처럼 더워졌다가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기도 한다. [출처: 다음 백과]


'토가오호고'에 지지대를 세워주다


여름 기운이 짙어진 텃밭에선, 만물이 점차 자라나 가득찬다는 '소만' 뜻대로 아이들 성장이 한창입니다. 아직은 작은 아이들이지만  정신없이 자라날 아이들을 위해 '토가오호고(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고추)' 지지대를 세워줍니다. 지금아이들보다  배는 됨직한 대를 세워주다 보면, 언제 이만큼 자라나 까마득해 보이지만 여름 작물들정말 하루가 다르거든요.

지지대 따라 곧게 자라나 어여쁜 열매들을 키워내는 멋진 어른 작물로  자라날까요? 지지대가 든든하면서도, 거기에 기댄 아직 작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여 자라라고 독촉하고 구속하는  같아 웬지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내 삶의 지지대는 뭘까, 문득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건강한 심신, 안정된 수입.. 그래, 다 좋은데...

이것들을 소망하고 좇는 삶이 어쩐지 지지대 노끈에 묶여버린 어린 작물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지지대를 소망하지 않는 삶은 자유로울까?

잎이 뻗치는 대로 온땅을 구르다 열매를 맺고 벌레를 만나고 비를 맞고 흙과 같이 뒹굴다가.. 시나브로 땅으로 돌아가는 작물들을 떠올리니, 자유로움 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인간의 '자유로움'이란 어떤 모습으로 가능할까요?

지지대가 든든하게 세워진 소만의 텃밭은 평화로운데, 한켠 마음이 헛헛한 건 왜일까요?


아랑곳 없이 상추들신이 났습니다.

옆집 토가오호고가 어쩐들 저쩐들, 소만의 상추밭은 신이 났습니다. 이렇게 싱싱하고 풍성할  있을까요? 더구나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냠냠! 아직 열매를 맺지 않는 한창 꽃상추, 적상추, 로메인, 샐러리, 쑥갓, 자꾸 이름을 까먹는 갖가지 상추들은 지지대가 없어도 벌레 자국 하나 없이 정말  자라고 있습니다. 매끼 상추만 있어도 너무 행복한 밥상, 찬란한 오월입니다. 냠냠!

상추들아 고마워, 너희들이 있어 매끼가 풍성하구나!
용캐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튀운 기특한 고수와 뒤늦게 데려온 루꼴라에 피운 꽃. 나름 풍성한 소만의 허브존


'  보소'  꽃들

정원에는 키가 훌쩍  아이리스샤스타 데이 목을  빼고 어여쁜 꽂을 피워냈습니다. 아직은 잡초들도 숨을 고르고 있는 평화로운 꽃밭에서, 유유자적 오래 오래 꽃을 틔우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소소한 행복과 평화를 오래 오래 누리도록,  여름천천히 차오르길 소망해보지만..

계절은 그저 흐를 뿐, 시절을 멈추어 주지 않습니다.

가늘고 긴 줄기에 큰 꽃을 피워내며 제 힘으로 버티는 씩씩한 아이들


소나무 전정, 올 것이 왔다!

우리 마당소나무가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봄에 무럭 무럭 자라나며 손톱을 세우는 소나무들이 사실  무서워요.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들이 이렇게 손을 많이 타는 나무인지 시골살이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매해 가지를 잘라주고 다듬어 주질 않으면 금새 집을 덮쳐버릴  같은 기세입니다.

송진가루 날리는 봄이 가고 이제  것이 왔습니다, 소나무 전정 시즌! 사실 작년에도 전정을 제대로 못했고, 올해도 자신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앞마당의 작은 소나무  그루만 손을 보기로 합니다. (이미  소나무들은    없어요. 사다리에 올라서서 긴 전장가위를 뻗쳐들어도 진짜 닿지도 않아요. 집을 정말로 덮칠  같으면 전문가를 모셔야 겠지요.)

솔잎 가운데 가장 길게 자라난 순을 따주기 시작합니다. 가운데 순이 자라면서  가지가 되고,  다른 솔잎들을 키워내며 소나무가 커지거든요. 가운데 순을 똑똑 따주는 순간은 의외의 기쁨을 줍니다.  잘라내야 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정말 명쾌하거든요.


살면서 이렇게 명쾌한 순간이 얼마나 될까? 소나무 순따기가 주는 큰 기쁨입니다.


사다리, 전정가위, 손수레, 돗자리.. 온갖 장비들을 총동원하지만 결국은 장비빨만 내세운 소만의 소나무 전정 해프닝

정작 가지 자르기는 시작도 못하고, 시든 가지들만 쳐내는 정도로, 이번에도 전정작업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무들은 보살피기가 정말 힘에 부쳐요. 그런대로   나무들과 정신 없이 자라날 텃밭 꽃밭 잔디들과 여름을 지나보렵니다.


해먹에 누워 바라보는 초여름

단풍나무 아래 해먹을 펴고 누워, 한창 자라나기 시작하는 작물과 꽃들을 바라보초여름은 ‘천국’입니다. 행복해! 외마디가 튀쳐나와요.


찬란한 오월아, 천천히 채워져라! 소소한 이 행복이 오래 오래 머물도록
해먹에 누워 지금의 평화로움을 만끽해봅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잡초의 공격이 벌써부터 걱정되요)




게으른 정원가의 '소만' 사용법

1. 토가오호고 지지대 세워주며 딴 생각하기

2. 소나무 순 따주며 전정작업 흉내내기

3. 해먹에 찬란한 오월을 만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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