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박힌 돌부리처럼, 올해도 그날은 어김없이 마주 왔고 어김없이 내 발걸음을 턱, 멈춰 세웠다. 이미 지나온 길에서만 작아도 열 번은 마주했던 질긴 구면임에도 발걸음은 마치 처음 마주해 놀란 것처럼 그 앞에 멈춰 선다.
지금도, 앞으로도 지나가는 길 위에서 그 사람을 마주할 일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매년 그날만 돌아오면 꼭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그날을 잊고서 디뎌가는 내 걸음에 얇고 긴 허무함의 꼬리로 밟힌다. 아직도 그 사람에게 얽혀있는 이유는 미움이 부족해서였을까, 그 사람의 기일을 맞기 전 더더욱이 미워했어야 했나. 아님 오히려 용서라는 걸 했어야 했나. 하는 이런저런 그냥 못 본 척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얇지만 결코 지나 칠 수 없는 괘념의 끝으로 이끌며.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약이라고 처음 마주한 그날만큼은 아니라는 거다, 발걸음이 멈춰있는 시간이, 멈춘 발걸음보다 아래로 추락하는 마음이. 그럼에도 발걸음이 멈추고 기분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 약이 부족해서인가 싶다, 무던하기엔.
아픔의 정도에 따라 사흘정도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고 보다 길게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듯, 아마 이 약은 지금까지 보다도 더 오래, 어쩌면 나의 기일을 맞이하는 날까지 복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그 돌부리는 빠지지 않고, 나는 어김없이 멈춰 서겠지만, 점점 괜찮아지리라 믿는다. 그렇게 발걸음이 멈춰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짧아 저 멈춰 서지도 않고 하나의 풍경으로 여기며 지날 때 비로소 나는 무던하게 지나가는 법을 배웠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